(존 웨슬리 이야기 51) 감리교 반회(Band Meeting) 3

(존 웨슬리 이야기 51) 감리교 반회(Band Meeting) 3

시온 0 174


존 웨슬리가 만든 반회(Band Meeting)는 성도들의 호응도가 기대보다 낮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거룩한 삶을 위한 반회의 효과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교육 방법보다 반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요청했습니다.

 

1768년 존 웨슬리는 감리교 모든 설교자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어디서든지 형제나 자매가 네 명만 모이면 바로 반회로 묶어주십시오. 반회가 있는 곳에서는 지속적으로 반회로 모여서 숨김없이 고백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십시오.”

 

1788년 존 웨슬리는 얌 순회교구의 교역자였던 일리엄 심슨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모든 신도에게 신도반 모임에 대해 개별적으로 이야기하십시오. 얌 순회 교구에 많지는 않지만 반회가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신도회 안에 반회를 두지 않고 부흥한 순회교구는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열심히 모든 감리교 성도들이 반회에 참석할 것을 요청했지만 실제로 반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기대보다 적었습니다. 파운더리 신도회의 기록에 보면, 신도회와 속회 모임에 2,200명이 참석했지만, 반회 참석자는 639명이었고 수습회원도 3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반회는 감리교 부흥 운동의 핵심이었습니다.

 

반회는 진실한 자기 고백을 통해 단체로 아주 깊은 마음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반회에서 정직한 자기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섬세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반회(Band Meeting)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기존 반회 참가자의 추천을 받아 철저한 검증을 거친 신청자만이 심사과정을 거쳐서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반회는 참가자 외에는 다른 어느 누구도 참관할 수 없었습니다. 또 반회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는 철저하게 비밀에 붙이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회원들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는 반회를 누구보다 좋아했습니다. 그 자신이 반회를 통해 나누는 긴밀한 대화에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반회에 참석해서 자신의 내면의 깊은 고민과 죄의 유혹 등을 고백했습니다. 또 그는 반회 회원들이 자신의 내적인 삶에 대해 던지는 질문을 진지하게 들었고, 사랑으로 그런 질문을 던진 회원들에게 깊이 감사했습니다.

 

말년의 존 웨슬리는 피터 뵐러, 헤론후트의 크리스천 데비이브, 윌리엄 로, 그리고 어머니 수산나와 나눈 깊은 영적 대화를 회상하며 늘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존 웨슬리는 누구보다 실용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서 반회에서 자신의 죄와 실패를 숨김없이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는 반회에서 서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 함께 죄의 본성을 깨닫고 죄의 습관을 벗어버리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죄의 사슬을 끊고 더 이상 죄에 지배당하지 않는 승리의 삶을 살도록 모든 감리교 성도들이 반회에 참석하기를 바랐습니다.

 

존 웨슬리는 반회에 대한 확신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성도들이 10시간 공개 설교를 듣는 것보다 반회에서 시간 동안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통해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운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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