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65) 아름다운 감리교인 존 플레처 2

(존 웨슬리 이야기 65) 아름다운 감리교인 존 플레처 2

시온 0 6


존 플레처(John W. Fletcher)는 감리교 부흥 운동에서 존 웨슬리의 가장 신뢰받던 동역자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존 플레처와 같은 동역자를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했으며,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78556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존 웨슬리는 가장 신뢰했고 사역에 큰 힘이 되었던 이름다운 동역자를 잃고 많이 슬퍼했습니다.

 

존 플레처의 성품은 다정다감했고 순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만날 때 땅 위에 사는 천사와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기도와 묵상과 금식과 절제와 금욕으로 일관된 경건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경건의 아름다운 본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하루 14~16시간 동안 쉬지 않고 교인들을 심방하고 전도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광산 노동자들을 방문하여 도왔습니다. 그는 하인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그는 경건을 위한 공부에도 누구보다 열정적이어서 밤새도록 성경을 읽고 신학 서적을 공부했습니다. 또 그는 감리교 내에서 예정론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성경적인 구원론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친 금욕주의적 경건 생활로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폐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 주간에 이틀은 꼭 앉아서 성경 읽기와 기도와 묵상 가운데 보냈습니다. 그는 기도 중에 자주 입신을 경험했고, 어떤 때는 6개월 동안 야채와 조금의 빵과 물만 먹으며 지냈습니다.

 

존 웨슬리는 그의 건강을 염려하여 그와 자주 함께 여행하며 그의 건강을 돌봐주었습니다. 그럴 때 그의 건강은 잠시 회복되기도 했습니다.


1781년 존 플레처는 헌신적인 감리교 아가씨인 메리 보산켓과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 이후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안정된 삶을 살게 되지만 이미 손상된 건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존 플레처는 언제나 자기 부인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정의, 인내, 평화, 기쁨, 겸손, 온유로 가득 찬 모습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모든 관심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었습니다. 그는 존 웨슬리처럼 자주 홀로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면서 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함께 경험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잘 훈련받은 지성과 성경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설교에 있어서 남다른 열정과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설교하면 많은 영국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들으러 갔습니다.

 

우리는 그를 보기 위해서 갑니다. 천국의 빛이 그의 얼굴에서 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는 그와 30년을 지내면서 그가 단 한 번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존 플레처를 세상에서 완전한 성화를 얻은 감리교 부흥 운동의 표본이 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모든 감리교인이 그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존 플레처는 거룩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모델이었습니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