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101) 미국 감리교회의 탄생 1

(존 웨슬리 이야기 101) 미국 감리교회의 탄생 1

시온 0 6


감리교회의 미국 선교는 1735년 존 웨슬리 형제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조지 휫필드는 조나단 에즈위드와 함께 미국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고 미국 복음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감리교 신도회를 맨 처음 조직한 사람들은 영국에서 이민 간 평신도 감리교인들이었습니다.

 

1760년 미국에서 신도회를 조직한 최초의 감리교인들은 농부, 목수, 공장 노동자, 광산 노동자, 양복 수선공, 퇴직한 군인, 학교 교사, 구두 수선공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개인 전도로 신도회를 조직하였고, 속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부흥이 일어나자 존 웨슬린에게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조셉 필모어와 리처드 보드만을 평신도 설교자로 파송했습니다. 1770년에는 프란시스 에즈베리(Francis Asbury)와 리처드 라이트가 평신도 설교자로 파송되었습니다. 이들은 존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라 말을 타고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헌신적인 순회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영국의 감리교 부흥 운동이 미국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에즈베리는 미국 전역을 돌면서 헌신적으로 활동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에즈베리의 모습을 보면서 존 웨슬리의 모습과 동일한 신앙적인 열정과 헌신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에즈베리는 미국 감리교회의 초대 감독이 되었고, 위대한 신앙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177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초대 감리교 설교자 총회가 열렸습니다. 신도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일꾼이 부족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속도로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데, 안수받은 목회자가 부족해서 세례를 줄 사람도 부족했고 성만찬을 베풀 사람도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독립전쟁이 일어나면서 영국 성공회 성직자들이 대부분 영국으로 귀국하면서 미국 감리교회는 성직자를 만나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미국 감리교회 성도들은 존 웨슬리에게 안수받은 성직자를 빨리 보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 런던 감독에게 미국 감리교인들을 위해 성직자를 파송해 줄 것을 세 번이나 간곡하게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성경과 이 문제에 대한 서적들을 읽으며 하나님께 답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사도행전과 초대 교회 전통을 연구하고 로드 피터 킹(Lord Peter King)의 책 초대 교회에 대하여(Account of Early Christian Church)’를 읽고 난 후에 신자들의 영적 유익과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감독이 아닌 목사도 성직자를 임명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역사적인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178491일 리초드 와트코트와 토마스 베이지를 준회원 목사로 안수하고 그 다음날 정회원 목사로 안수하게 됩니다. 이에 앞서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 정회원 목사인 토마스 코크(Thomas Coke)를 감리사로 안수하게 됩니다.

 

존 웨슬리는 이미 영국 성공회 성직자를 안수하고 평신도에게 안수를 주어 성직자를 임명하고 있으니 사실상 감독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토마스 코크는 옥스퍼드 민법학 박사였습니다. 그는 뜨거운 신앙으로 열정적으로 전도하다가 영국 성공회에서 교구를 맡지 못하고 존 웨슬리를 따라 순회 설교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코크 박사를 감리사로 임명하고 안수해주었습니다. 감리사라는 직능은 히포의 어거스틴이 먼저 사용했다는 학설이 있지만 근대 교회 역사를 통해 보면 존 웨슬리가 제일 먼저 사용했던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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