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뮬러 이야기 17)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훈련 1

(조지 뮬러 이야기 17)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훈련 1

시온 0 8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에게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18278월이 되자 조지 뮬러는 선교사로 나가고 싶은 열망이 이전보다 휠씬 더 간절해졌습니다. 그때 영국대륙협회에서 부쿠레슈티(Bucureșt)에 가서 복음을 전할 선교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부쿠레슈티(Bucureșt)는 현재 루마니아의 수도지만, 뮬러 당시에는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영국대륙협회는 부쿠레슈티(Bucureșt)에 보낼 선교사를 선발하는 일을 톨룩 박사에게 일임했습니다. 톨룩 박사는 할레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할레 대학 신학생들에게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조지 뮬러는 주저하지 않고 톨룩 박사에게 선교사 후보생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선교사로 나가도록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곧 부쿠레슈티의 선교사로 파송될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는 매일 선교지를 생각하며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곳에서의 사역은 많은 희생과 고난이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종으로 가장 힘든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조지 뮬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유리한 입장에도 부쿠레슈티에 갈 수 없었습니다. 부쿠레슈티를 두고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선교지로 부쿠레슈티가 닫히자 금방 다른 곳을 향한 문이 열렸습니다. 폴란드에 가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182710월 조지 뮬러에게 선교사의 삶을 살도록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헤르만 볼(Hermann Ball)이 헬레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뮬러의 방에서 모인 기도 모임에 참석해서 건강 때문에 폴란드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사역을 계속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을 듣는 순간 조지 뮬러는 그곳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조지 뮬러는 톨룩 박사의 방을 방문했다가 톨룩 박사에게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톨룩 박사는 런던선교회를 대신해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할 선교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톨룩 박사의 질문에 조지 뮬러는 유대인을 향해 뜨거운 선교적 열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톨룩 박사의 추천으로 조지 뮬러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 후보생이 됩니다. 런던선교협회는 조지 뮬러에게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준비하는 선교지원자로 6개월 동안 런던에서 지내며 선교를 준비하라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일종의 수습 기간을 보내라는 뜻으로 피곤한 일이지만 조지 뮬러는 선교 위원회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제언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조지 뮬러에게는 선교사로 바로 나갈 수 없는 또 다른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독일 프로이센의 남자들은 군 복무를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대학에 다니는 남자라도 군 복무를 적어도 1년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지 뮬러는 전혀 군 복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나라 밖으로 나가는 여권조차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는 즉시 군 면제 신청을 냈지만, 거부당하게 됩니다.

 

그는 베를린에서 몇 주간 독일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고, 베를린에서 자신의 군 면제를 위해 힘을 써줄 사람을 찾아서 부탁하지만, 그것도 실패하게 됩니다. 그는 군 복무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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