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61) 은혜로 얻고 유지되고 완성되는 구원
존 웨슬리는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존 웨슬리가 예정론자들을 비판하고 반대한 이유는 선행과 성결한 삶을 파괴하는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정론에 따르면 하나님의 예정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은 무슨 죄를 저지르더라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구원에서 떨어질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이들의 논리대로 생각하면 선행을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 훈련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예정론자들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든지 상관없이 죽어서 천국만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를 따르는 감리교인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존 웨슬리를 감리교인들에게 구원을 얻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마음의 성결과 생활의 성결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감리교인들은 구원받은 자라도 마음의 성결과 생활의 성결을 위해 거룩한 믿음의 훈련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지 휫필드를 따르는 감리교인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대로 존 웨슬리를 따르는 감리교인들은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존 웨슬리를 따르는 감리교인들은 치밀한 전도와 빈틈없는 공동체를 이루어 성도들을 철저하게 믿음으로 훈련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를 따르는 감리교인들은 계속 늘어갔지만 18세기와 19세기의 영국과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부흥사들은 대부분 예정론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예정론은 전도를 필요 없게 만든다고 비판했지만 예정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복음 전도에 힘썼고 누구보다 진정한 회심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많은 부흥사가 예정론을 믿었고 그것을 강조해서 가르쳤던 이유는 강렬한 순간적인 회심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심의 감격과 기쁨이 클수록 사람들은 구원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려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예정론으로 굳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 형제는 누구보다 은혜를 강조했습니다.
존 웨슬리 형제는 구원은 선행적 은총, 칭의의 은총, 성화의 은총을 통해서 얻게 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구원은 결국 값없이 주어지는 은총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성령의 역사로 회심과 신생을 경험하게 되지만,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현세에서 마음의 성결과 생활의 성결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고 존 웨슬리가 하나님의 예정을 아예 믿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존 웨슬리도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을 믿었습니다. 그가 믿은 예정은 크게 2가지입니다. 먼저 그는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되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일류를 긍휼히 여기셔서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도록 인류 구원의 계획을 예정하셨다고 믿었습니다.
그 다음 그는 구원을 위한 섭리적 예정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를 구원자로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민족이나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따르는 자를 무조건 구원자로 택하십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는 인류 개개인이 세상에 나기도 전에 영원한 은총으로 선택되거나 영원한 저주로 버림을 받는다는 예정론은 거부했습니다.
예정론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감리교 부흥운동은 존 웨슬리를 따르는 신도회와 조지 휫필드를 따르는 신도회로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갈라진 후에도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서로 자기 신도회에 설교자로 초청을 했고 우정이 상하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서로 노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