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5월 8일 주일) - 긍휼 (제주 미술관 순례 – 기당미술관 3)

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5월 8일 주일) - 긍휼 (제주 미술관 순례 – 기당미술관 3)

시온 0 1931

오늘의 아포리즘 (202258일 주일) - 긍휼 (제주 미술관 순례 기당미술관 3)

 

2022425~28일까지 제주도 미술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순례하면서 느꼈던 점을 메모했다가 이곳에 정리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26일 화요일 오전 서귀포 기당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기당미술관에는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의 상설 전시장이 있습니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 제주도 미술관 여행 중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함께 갔던 아내는 그림을 보면서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고 고백했습니다.

 

변시지 화백에게 폭풍의 화가라는 별칭을 붙여준 서종택 고려대 교수는 그를 제주도의 폴 고갱이라고 불렀지만 저는 그를 한국의 고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밤하늘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던 고흐처럼 변시지 화백의 그림에 나오는 바람은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시지 화백은 1926520일 제주도 서귀포시 서홍동에서 5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제 식민지 아래 모두가 궁핍하게 살았지만, 변시지 화백의 가정은 물려받은 농토와 재산이 있어서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변시지 화백의 아버지는 한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일본을 왕래하면서 신학문도 익힌 분입니다. 변 화백의 아버지는 아들이 더 넓은 세계에서 변화된 세상의 흐름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변 화백은 어린 나이인 6살에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오사카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변 화백은 2학년 때 4학년 선배와 씨름을 하다가 오른쪽 다리를 다쳐서 평생 지팡이를 집고 생활하게 됩니다. 그에게 닥친 예상치 못했던 불행은 그를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그는 소학교 3학년 때 아동 미술전에서 오사카 시장상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하여 화가의 길을 가게 됩니다.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동경으로 건너가 데라우치 만지로(寺內萬治郞)’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인물화와 풍경화를 배우게 됩니다.

 

1948년 변시지 화백은 일본 최고 권위의 미술대회인 34회 광풍회(光風會) 공모전에서 23살이라는 최연소 나이로 최고상을 받게 됩니다. 그는 일순간에 일본 전역에서 주목하는 화가가 됩니다. 그러나 화려한 작가의 삶 속에서도 그는 이상하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느낍니다.

 

이때 마침 서울대학에서 강의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는 영구 귀국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 생활은 그에게 새로운 고통과 시련을 주었습니다. 자유당 말기 우리나라 특유의 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쳐진 화단의 반목과 질시가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1975년 그는 제주대학교에서 강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44년 만에 고향 제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나머지 38년의 세월을 제주에서 보내게 됩니다.

 

변시지 화백의 작품은 그가 거주했던 지역에 따라 3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인물화를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던 일본 시대(19471957), 고궁의 풍경을 극사실주의로 그렸던 서울 시대(19571975), 황토색 바탕에 먹빛으로 독특한 자기만의 그림을 그렸던 제주 시대(19752013)로 나뉩니다.

 

기당미술관에서 만난 변시지 화백의 작품들은 전부 제주도에서 그린 그림들입니다. 제주도에서 그린 변시지 화백의 그림은 모두 바탕이 황토색 바탕으로 그린 그림들입니다. 그는 제주의 색깔은 황톳빛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태양 빛이 강렬하게 비추면서 모든 것이 누렇게 다가왔습니다. 제주는 제게 누런색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강렬한 태양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강한 바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은 황토색입니다. 저는 변시지 화백의 황톳빛 그림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떠올렸습니다. 제주 특유의 강한 바람 앞에서 모든 것은 금방 엉클어지고 사라집니다. 흙에 씨를 뿌려도 강한 바람으로 흙과 씨앗이 모두 날아가 버립니다. 흙에 그림을 그려도 강한 바람에 그림은 금방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배경이 화강암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전후로 무너지지 않고 자기 책임을 다하는 일상의 영웅들을 화강암에 새겨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화강암에 그림을 새겨놓은 것 같습니다.

 

반면 변시지 화백의 그림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톳빛 흙에 그린 그림입니다. 언젠가 그림도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변시지 화백의 그림에는 사라져버릴 것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과 연민이 담겨 있습니다. 본인 자신도 곧 사라져버릴 존재임을 알고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과 함께 있는 생명에 대해서도 그는 깊은 연민과 애정을 그림에 담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 부분이 떠오릅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너무나 작고 약한 인생의 유한성을 잘 보여줍니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고 연약하기에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유한하기에 소중하고 연약하기에 귀하다는 사실을 변시지 화백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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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끝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 끝에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을 결산하는 시간입니다. 끝이 있음을 안다면 우리는 교만할 수도 없고 착각에 빠질 수도 없습니다.

 

나의 한계와 연약함을 안다면 우리는 연약한 모든 것을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우리는 연약하다는 이유로 누구도 무시하거나 업신여길 수 없습니다. 나도 누구보다 연약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끼리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난 순간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인연을 대하는 우리의 마땅한 태도일 것입니다.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69:20)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19:77)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9: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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