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 믿음의 실력 1
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 믿음의 실력 1
1994년 8월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처음 집결한 장소는 춘천 102보충대였습니다. 그곳에서 약간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군이란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화요일에 입소해서 수요일 오전에 수요 저녁 예배를 위한 성가대를 모집했습니다.
손을 들고 성가대에 자원하니 예배당으로 인도를 했습니다. 지휘자나 반주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훈련병 안에서 지휘자와 반주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한 훈련병이 지휘를 자원하자 반주자로 다른 훈련병이 자원했습니다. 그래서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연습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지휘자가 이런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집을 처음 떠난 본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집을 떠나 새롭고 낯선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우리 모두 이제 집을 나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니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우리 주님께 맡기는 기도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이런 설명과 함께 복음성가 ‘오늘 집을 나서기 전에’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저도 늘 하던 설명이었는데, 그날 제 상황이 너무나 절박해서 그런지 그 설명 하나하나가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부르자 갑자기 제 안에서 회개가 터져 나왔습니다.
1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 오늘 받을 은총 위에 기도했나요 /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2 맘에 분이 가득 찰 때 기도했나요 / 나의 앞길 막는 친구 용서했나요 /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3 나의 일생 다 가도록 기도하리라 / 주께 맡긴 나의 생애 영원하리라 /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이 찬송을 부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교회 봉사를 하면서 예배에서 정말 많은 찬양 인도를 했는데, 내가 인도했던 찬양의 시간에 나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했던 분도 있었을 텐데 나는 얼마나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해왔던가? 절박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더욱 정성껏 찬양을 인도했던 적이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눈물이 멈추지 않고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로는 울음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멈춰지질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어떤 일을 시키시는지 정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섬기겠습니다. 하나님! 평생 교회에서 걸레로 의자만 닦으라고 하셔도 평생 기쁨으로 의지만 닦겠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하나님의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섬기는 교회는 역사가 117년 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을 만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교회의 궂은일을 거의 도맡아 하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장로님은 젊은 시절 군에서 폐에 물이 차는 병에 걸렸습니다. 국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에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에 병원에 있는 예배실로 가서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울부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너를 쓸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예배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회진을 돌던 의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국군병원에서는 치료하기 어려우니 제대할래?”
장로님은 가족들과 상의를 하고 몸이 아픈 채로 제대를 했습니다. 그런 다음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치유의 기적으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장로님은 평생 교회를 돌보고 일을 하고 계십니다. 새벽 3시 30분이면 일어나 준비를 하고 4시에 새벽기도를 위해 불을 켜놓고 음악을 켜놓습니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온풍기를 틀어놓습니다. 주일 준비도 혼자서 척척 준비해 놓으십니다. 요리에 탁월한 은사가 있어 누군가 식사를 해야 하면 조용히 장을 봐서 맛있는 요리를 해주십니다.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일은 거의 장로님께서 조용히 혼자서 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장에서 봉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교회 봉사를 위해 묶어두신 분 같습니다. 시간이 될 때는 운전 봉사도 하십니다.
저는 장로님을 보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 중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을 조용히 묵묵히 해내는 것은 놀라운 믿음의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1~2년이 아니라 거의 평생을 드러나지 않는 일들을 당당하게 하는 것을 탁월한 믿음의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장로님을 보면서 보충대에서 제가 했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부끄럽지만 평생 교회 의자만 닦아도 감사하겠노라는 고백을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습니다. 늘 청소는 성도들이 섬겨주셨고 저는 늘 섬김을 받기만 했습니다. 조금만 일해도 남들이 다 알아주는 자리에만 있었습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일이라면 조용히 티 내지 않고 묵묵히 할 수 있는 믿음의 실력을 갖출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 목사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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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회는 좋은 일꾼이 있습니다. 일꾼이란 말은 헬라어로 휴페레테스(hupéretés / ὑπηρέτης)입니다. 이 말은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히포(hypó)와 에레쏘(ēressō)입니다. 히포(hypó)는 ‘아래’라는 뜻이고 에레쏘(ēressō)는 노를 젓다는 뜻입니다. 일꾼은 위에서 소리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아래로 내려가 묵묵히 노를 젓는 사람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에 보면 이순신 장군이 탄 판옥선이 나옵니다. 갑판에는 이순신 장군이 있고 배 밑에는 노를 젓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이순신 장군의 명령에 따라서 힘을 모아서 노를 졌습니다.
좋은 교회는 입으로 떠드는 사람은 하나만 있고 나머지는 밑으로 내려가 일이 되도록 묵묵히 섬기는 교회입니다. 저부터 말을 줄이고 조용히 밑으로 내려가 묵묵히 섬겨야겠습니다. 보이는 것에서 승부를 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승부를 내는 목사가 되어야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 2:7-1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전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