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진

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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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지진 (사적 제225호)

 

       초지진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번지에 위치한다. 김포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약 550m 가면 강화해협 해변에 위치하며 조선 시대 군사 기지이다. 당초 안산에 설치되었던 초지진을 1656년(효종 7)에 이설했으며, 1665년(현종 6)에는 수장을 종4품 수군만호에서 종4품 병마만호로 교체했다. 병마만호 지휘 하에 군관 23명과 토졸 68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1679년(숙종 5) 초지돈대를 축조 할 때의 성곽 형태는 횡직형(橫直形)으로 둘레 83보,약 99.6m에 34개의 첩이 설치되었으나, 이후 변형되어 현재는 부정형으로 축조되었다.

 

      초지진에는 초지돈대, 장자평돈대, 섬암돈대가 배속되었고, 종3품 첨절제사가 지휘를 했다. 초지진은 강화해협을 남쪽에서 접근하여 만나는 최전선 기지이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1876년(고종13)운요호 사건, 그 때마다 초지진은 최선을 다해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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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해설사의 현장 해설 ]

1. 초지돈대 포각 안에는 진품 홍이포가 있다. 어떤 일본 교관이 홍이포를 뜯어 자기 집 별장 기둥 밑받침으로 사용했는데 해방 직후 문교부장관을 지낸 장택상씨가 매입하게 되어고 1973년 문화재 관리 국에 의해 초지진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접한 아들 장병찬씨가 홍이포를 뽑아 헌납하여 전시해 놓았 다 한다.

 

2. 초지진 성벽을 자세히 보면 3종류의 돌이 보인다. 소나무 밑에 있는 성벽은 포탄 맞은 자리를 표시 한 것으로 보아 당시의 성벽으로 볼 수 있다. 초지돈대 입구 쪽 성벽은 전쟁으로 파괴되어 흩어진 당시의 성돌을 그대로 사용하여 쌓은 모습이며 가운데 옅은 색을 띄는 부분의 돌은 복원 당시 기계로 깍아 만든 돌로 쌓은 성벽 모습이다.

 

3. 포맞은 구멍자리를 표시해 놓았는데 어떻게 설명하면 사실을 증명할까?

구멍은 형체가 없다. 그러나 구멍을 포함하고 있는 성벽이 포를 맞은 부분만 파괴되고 주위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증명 되지 않을까? 바로 이 방향 성벽이 피해를 면하고 잔존하는 곳이다.

 

4. 포탄 맞은 두 소나무는 어느 방향에서 쏘는 포탄을 맞았을까? 바다 반대쪽 벌판에서 어떻게 포를 쏘았을까? 역사를 바로알기 위해 유적지 현장을 꼭 찾아가야 한다. 

    

     

             ●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

               지금의 초지진 옆 넓은 벌판 장자평은 서세동검시대 서양세력의 침략이 있던 때 까지도 간척 되지 않은 갯벌

            이었고 바다였다. 1918년 지도에서 보이듯이 이후 몇십 년 후에야 장자평이 간척되어 넓은 논이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 소황산도와 황산도까지 연결되어 포구에는 횟집들이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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