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친구중에
전도 하기를 피하지 마라
학창시절 친구중에 한 친구가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교회에 나오기를 중단했다.
과학적으로 보나 논리적으로 보나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이였다.
또 한 친구는 시간만 나면 나에게 읊퍼 대는 노래가 있었다.
"예배당에 갔더니 눈 감으라 하더니 신발을 훔쳐갔네"하는 가사로 자작곡이 였다.
어느날 동네 아주머니 아들에게 전도를 하게 되었는데 다짜고짜
나에게 와서 우리는 믿는게 있으니
하나님 안 믿는다고 하면서 아들을 끌다시피 하여 데리고 갔다.
그런데 훗날 보니 오병이어를 말도 안된다던 친구는
교회에 안수집사가 되었고
신발도둑 타령하던 친구는 장로가 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전도를 방해하던 아주머니는 그 후로 교회에서
종소리가 나면 왠지 교회에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너무나 나서
견딜 수없어 교회에 출석했노라 간증하였다.
학창시절 차안에서 예수님 이야기 하면 내 주먹을 믿으라고
하면서 교회를 반대하던 욕쟁이 동네 형님은 장로가 되었다.
그 후에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은 교회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절대적 불신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믿는사람들을 보면
교회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교회에 나와 신앙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진정한 전도를 하려면 이들을 위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늘 기도하며 전도의 기회를 찿아서 복음을 전하면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있다.
전도할 때 혼자 전하는 것도 좋지만 믿는 사람이 같이 합석하여
전도하게 되면 상대방이 강력한 주장을 하다가도
긍정으로 돌아서는 효과를 보게된다.
예수님도 전도 하러 제자들을 보내실 때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신
것은 이러한 장점을 가르쳐 주신 좋은 예가 된다.
사도 바울이나 김익두 목사님처럼 핍박하던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 훨씬 열정적임을 볼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
오히려 좋은게 좋고 믿어야지 하는 사람들을 더 교회에
이끌기가 힘들다는 것을 한번쯤 경험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옛날 전혀 교회에 나오지 않을것 같았던
사람들이 세월이 흘러 만나니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는것을
보게 되었다.
우리 주변 그 누가 언제 신앙의 길로 나올지 모른다.
우리가 권면하지 않는게 문제다.
내가 어렸을때 동네에 천주교 신자가 다른 사람에게 성당에
나오라고 늘 전교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이 나에게도 나오라고 하였다면
나는 천주교 신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끝내 나에게는 그런 말을 안했고 어느날 동네 형님이 나를
찾아와 우리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는데 나와보라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 하였다.
이처럼 말 한마디가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전도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알리고 단순한 부분이라도
체험 하도록 이끌며 초청하는 것이다.
우연찮은 기회에 부산에서 우씨성을 갖은 청년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믿음이 충만해 져서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신앙생활을 하는것을 본적이 있다.
전도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내 몸에 보석을 갖고 있다면 남에게 보여 주고 자랑 하고 싶듯이
보화보다 더 귀중한 예수님을 보여주고 자랑하는 것이
전도다.
어떤사람이 이야기 했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의 존재가 왜 필요한가?"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은 것이다.
몇칠전 처 사춘이 돌아가셨다.
아내는 말했다.
"나를 그렇게 사랑하던 오빠였는데 전도하지 못하고 보냈다"고 하면서
크게 우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아직 우리에게는 복음 전할 기회가 있다.
살아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과 오늘 내가 만날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 밥이다.
우리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때를 놓치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은 피의 값을 우리에게 물으실
엄위하신 주님의 책망을 기억하고
전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라고 놀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