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성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시온성 0 5693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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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왓슨

 

이성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신자의 마음에는 거룩한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경외란 ‘거룩한 두려움’, 즉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존중하는 마음을 뜻한다.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신 눈길 앞에 우리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태도, 그것이 곧

경외의 참뜻이다. 한마디로 경외는 하나님과 우리의 무한한 차이에서 생겨나는 감정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전12;13). 경외는 가장 앞선 은혜, 즉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뿌리신 첫 번째 씨앗이다.

신자에게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고 선한 분이시다. 따라서 참 기독교인이라면

그분을 노엽게 하거나 혹시나 그분을 잃을까봐 늘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독교인의 필수의무이다.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전5:7).

경건한 자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두려워하듯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악한 자들은 죄인이 재판관을 두려워하듯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짝을 이루는 것들이 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사랑’과 짝을 이룬다(시145:19,20).

경외와 사랑은 반드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사랑은 영혼의 동작을 빠르게 만드는 ‘돛’과 같은 역할을 하고, 경외는 영혼을 믿음 안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바닥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경외심이 없는 사랑은 제멋대로일 가능성이 많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믿음’과 짝을 이룬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경외심을 하나로 묶어 주셨다. 경외심은 진지한 마음을 잃지 않게 해주고, 믿음의 기쁨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경외심은 그물에 달린 납덩이처럼 주제넘게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주고, 믿음은 그물에 달린 코르크처럼 절망으로 깊이 가라앉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신중함’과 짝을 이룬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롭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를 미리 보고 잘 피해간다(잠22:3). 경외심은 사람을 비겁하게 만들기보다는 신중하게 만든다.

 

넷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소망’과 짝을 이룬다.

경외심은 소망을 소중히 품는다. 경외심과 소망의 관계는 기름과 등불의 관계와 같다. 경외심은 소망을 불타오르게 만든다. 하나님의 정의를 두려워 할수록 그분의 자비를 소망하는 마음은 더욱 커진다. 죄인들은 겉으로 “소망의 투구”를 쓴 것처럼 꾸밀 수 있을지 몰라도 “의의 흉배”는 갖추지 못한다.

 

다섯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근면함’과 짝을 이룬다.

참된 경외심은 근면한 태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참 신자는 두려워하면서 기도하고,

두려워하면서 회개한다. 경외심은 근면함을 북돋아준다. 새 신부는 단장하기 전에 신랑이 올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몸을 치장함으로써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한다.

 

경외심은 늘 깨어서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한다. 경외심은 나태를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죄인들이 지옥에서 느끼는 아주 작은 고통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데서 비롯하는 많은 수고가 훨씬 더 견디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의 눈이 항상 우리를 살피시기 때문이다.

군주의 눈길을 의식하는 사람은 그를 노엽게 할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주의할 것이다.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욥31:4). 하나님의 눈길은 어둠도 막지 못한다(시139:12). 인간 재판관은 드러난 사실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판단하신다. 우리는 매사에 신중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는데 우리가 어찌 죄를 지을 수 있겠는가?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벌레같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멸시하면 그분은 당연히 분노하실 수밖에 없다(겔38:18).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겔22:14).

악인들은 노예가 주인을 두려워하듯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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