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열쇠는 죄로부터 돌아서는 회개라는 사실입니다.
회개와 관련된 4가지 중요포인트
1. 첫째 포인트
모든 문제는 죄 때문이요, 문제 해결의 첫 열쇠는 죄로부터 돌아서는 회개라는 사실입니다.
다음의 질문을 해 볼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1) 은폐합니다. 밧세바를 범한 다윗처럼 죄를 범하고 숨기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숨길 수 있습니까? 결국 드러나고야 맙니다.
민수기 32장 2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죄가 정녕 너를 찾아낼 줄 알라!"
은폐로 죄 문제를 해결 못합니다.
2) 전가합니다. "저 사람 때문에"라고 하는 것이지요. 하와의 핑계를 대는 아담처럼.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은 여지없이 치기 시작합니다.
교묘한 방법으로 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켜
자신만은 그 죄에서 도피하려고 하나 그것도 해결책은 아닙니다.
3) 보편화 혹은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사람은 다 그래" 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경미화시켜, 그 잘못 앞에서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해결책이 아닙니다.
4) 보상입니다. 열심히 선행을 하고 종교적 행위를 하여 죄책감을 면하려는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보편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보상심리로 죄의 해결책이 아닙니다.
5) 자학 혹은 자기 처벌입니다.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몸과 영혼에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까 자신을 학대함으로 해결하려고 하나
이것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한가지 길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을 회개밖에 없습니다.
2. 둘째 포인트
회개는 마음의 변화, 즉 삶의 변화(열매)를 수반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의식 차이가 기복적 기독교와 참된 기독교의 차이라는 놀라운 방향 차이를 만듭니다.
기복적 기독교 : 입술과 머리로만 믿음으로 기독교가 이상주의 및 신비주의의 종교가 됩니다.
참된 기독교 : 입술의 기도와 더불어 손과 발의 신앙 고백이 수반되는 인격적 종교입니다.
< 회개의 의미 >
부정적인 의미 : 죄에 대해서 잘못을 느낍니다(죄로부터 돌이키는 것)
긍정적인 의미 : 실제적으로 변화된 삶을 삽니다(하나님을 향하는 것)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입니다.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이 말의 뜻은
믿음에 의해 "구원을 얻는다(죽음에서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에 의해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생활이 그 사람의 신앙의 창문입니다.
회개란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라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주님! 제가 이 죄를 떠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슬프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 죄를 내가 포기합니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3. 셋째 포인트
회개의 주체는 항상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기복신앙과 기독교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4. 넷째 포인트
우리는 수시로 회개를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회개는 믿는 자가 계속해서 주님에 대한 자기의 태도로서 보여야 할 것이지
단 한 번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회개와 관련된 자가 진단 질문 3가지
1. 문제 해결의 첫 열쇠는 회개라는 사실을 확실히 주지하셨습니까?
예) 오늘날 어떤 분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풀어 보겠다고 기도원에 갑니다. 기도원에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기도원에 가면 문제가 풀린다는 생각은 틀린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기도원에 불순종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기도원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죄로 말미암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첫 열쇠는 회개입니다.
2. 회개에 삶의 변화가 꼭 포함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주지하셨습니까?
이 삶의 변화란 완벽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삶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할 수도 없는 완벽한 삶을 의무화시키는 것 혹은 눈에 보이는 변화된 삶을 강요하는 것은 율법주의(nomianism)입니다. 반면에 변화된 삶이 없는 회개는 반율법주의(anti-nomianism)입니다. 회개가 강조하는 삶의 변화란 완벽한 삶과 눈에 보이는 변화된 삶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착한 마음"이 발동하는 그러한 삶의 변화를 말합니다.
회개와 변화의 관련성에 대해서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회개를 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담배를 피는 경우, 그 사람은 담배를 끊는 눈에 보이는 삶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은 것일까요?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회개를 했다면 그에게는 이미 삶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예전에는 스스럼없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아닌데."라고 자책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것이 삶의 변화입니다. 이 삶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변화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직 열매가 작습니다. 열매가 눈에 보일 정도로 커지면 좋겠지요.
3. 회개의 주체는 "나"라는 사실을 확실히 주지하셨습니까?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나"로부터 시작되게 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가 급속도록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