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41) 감옥 죄수들과 군인들의 회심

(존 웨슬리 이야기 41) 감옥 죄수들과 군인들의 회심

시온 0 371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 중에는 감옥의 죄수들이 많았습니다. 존 웨슬리가 평생 가장 많이 찾은 감옥은 브리스톨의 뉴게이트 감옥, 옥스퍼드의 바카도 감옥과 뉴게이트 감옥, 런던 근처의 타이번 감옥과 뉴게이트 감옥, 그리고 아일랜드의 뉴게이트 감옥 등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형법은 매우 가혹했습니다. 남의 집 나뭇가지 하나만 꺾어도 남의 집 개를 때리기만 해도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사형에 해당되는 죄목은 무려 160가지나 되었습니다. 귀족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1실링을 훔치거나 말이나 양 또는 토끼 한 마리만 훔쳐도 사형수로 고발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세상의 오물처럼 버려지고 죽어가는 죄수들을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사형수들이 처형되기 전에 꼭 만나 전도하고 구원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감옥의 소장과 직원들은 존 웨슬리가 죄수들을 만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주었습니다. 타이번 사형장의 직원들은 죄수들이 사형당하기 전에 존 웨슬리를 만나서 설교를 듣고 기도를 받도록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수많은 사형수들이 사형받기 전에 신앙을 고백하고 죄 용서의 확신과 구원의 확증을 체험하고 영혼의 평안과 천국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사형대로 나아갔습니다.

 

존 웨슬리는 죄수들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는 사형수들을 애처롭게 여겨 한 사람 한 사람 상담하고 기도하며 그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었습니다.


죄수들은 항상 존 웨슬리가 오기를 기다렸고 그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에 보면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들었던 죄수들은 거의 다 회개하고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특별히 사형수들은 존 웨슬리의 설교와 기도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고 성령 안에서 평화와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며 천국의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감옥 이름을 새로운 문(New Gate)’이라고 불렀습니다.

 

존 웨슬리 외에 다른 감리교 설교자들도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품고 그들을 대했습니다. 감옥 전도는 감리교 선교의 중요한 전통이 되었습니다. 감리교회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교도소에 교도소 목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교도소 목사를 파송한 교단이기도 합니다.

 

1784년 존 웨슬리는 런던의 뉴게이트 감옥에서 47명의 사형수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처음 그들의 얼굴은 죽음의 공포에 질린 절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듣는 도중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회개한 죄수들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고 얼굴에 하늘의 평안이 가득했습니다. 며칠 후 이들은 천국에 대한 분명한 소망과 확신을 품고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존 웨슬리는 군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는 군부대를 자주 찾아가서 설교했습니다. 당시 영국 군인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반 사병들은 왕의 이름으로 충성하다가 희생되면 희생 자체가 명예일 뿐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전쟁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은 병들어 쓸모없게 되면 결국 버림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당시 군인들은 국가의 노예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의 군인들이 죄수들이었습니다. 특히 사형을 면하기 위해 군에 들어온 사형수들이 많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이런 군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군인들은 존 웨슬리를 사랑하고 존경하여 존 웨슬리를 예수님처럼 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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