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74) 존 웨슬리의 결혼생활 3
존 웨슬리가 여자 성도들과 나눈 편지에는 의심받거나 비난받아야 할 요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존 웨슬리와 감리교의 부흥’이란 책을 쓴 헨리 D. 랙(Henry D. Rack)은 존 웨슬리의 편지에는 의심을 받거나 비난을 받을만한 것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에게 보낸 특정한 여성들의 편지와 편지의 내용은 메리에게 의심과 질투와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메리는 남편이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는 남편에게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자신에게 쏟을 걸 요구했습니다. 메리는 존 웨슬리의 전도 여행과 바쁜 목회 일정을 문제 삼았습니다.
메리는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했습니다. 아이들과 떨어져서 남편과 함께 전도 여행에 하며 살든지 아니면 집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했습니다. 메리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남편을 향한 의심과 질투와 분노와 배신감과 모욕감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메리는 남편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쏟아부었습니다.
메리의 질투심은 정신적 불안정을 초래했고, 때로는 성적인 질투심까지 보여 찰스의 아내가 존 웨슬리의 정부였다고 함부로 떠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또 그녀는 존 웨슬리가 전도 여행을 다닐 때 정부를 데리고 다닌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존 웨슬 리는 이런 종류의 비난을 받을 만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메리는 혼자서 왜곡되고 병적인 성격으로 무엇이든지 상상하는 대로 떠들어댔습니다.
존 웨슬리와 편지를 주고 받던 여성들은 대부분 충성된 감리교인으로 신앙과 경건과 선행에 있어서 모범적인 분들이었습니다.
존 웨슬리가 여성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완전한 성결에 이르도록 격려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한 상담 또는 조언의 형식이 많았습니다. 물론 편지 안에는 여성들이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것이 참 귀했던 시절이라 그들을 많이 격려하고 좀 더 온화하고 친절한 태도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표현들이 메리의 질투와 분노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존 웨슬리에 대한 메리의 의심과 질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녀는 존 웨슬리의 가방과 주머니에서 편지를 훔쳐내서 존 웨슬리를 망가뜨리기 위해 자기 마음대로 편지의 내용을 수정하여 존 웨슬리의 적대자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심지어 신문사인 ‘모닝포스트’에 넘겨주기도 했습니다.
메리는 브리스톨 뉴룸에서 관리자로 일하는 사라 라이언이 존 웨슬리의 정부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사라는 세 남자와 결혼했던 과거를 갖고 있지만 회심하여 감리교인이 되었고 다른 감리교인들이 그녀를 불쌍히 여겨 돕고 있었을 뿐입니다.
메리는 남편 몰래 남편의 설교 여행길을 100마일이나 추적하기도 했고, 사람을 고용해서 존 웨슬리의 행적을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병적으로 왜곡된 성격과 무서운 질투심으로 메리는 남편을 극단적으로 괴롭혔습니다. 온갖 욕설을 퍼붓고 중상모략하고 입으로 저주를 퍼부으면서 공격했습니다.
심지어 메리는 물리적인 힘으로 존 웨슬리를 공격했습니다. 그녀는 존 웨슬리를 손톱으로 할퀴고 손으로 때리고 밀고 발로 찼습니다. 메리는 존 웨슬리보다 체구가 컸습니다. 그녀가 몸으로 밀면 존 웨슬리는 밀려서 벽에 부딪혀 충격을 받았습니다.
존 웨슬리의 전기 작가인 존 함슨은 무서운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메리가 어떤 무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존 웨슬리는 기겁하며 담을 넘어 도망가다가 넘어져 죽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또 존 웨슬리의 집을 방문했을 때 메리가 존 웨슬리의 노란 머리카락을 한주먹 쥐고서 거품을 물고 이를 갈고 서 있었고, 존 웨슬리는 마룻바닥에 던져진 채 죽은 사람처럼 엎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