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33) 존 웨슬리의 전도 여행 3

(존 웨슬리 이야기 33) 존 웨슬리의 전도 여행 3

시온 0 571


존 웨슬리와 감리교 설교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전도 여행에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습니다. 매년 열리는 감리교 설교자 총회에서 그들은 만나면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살아있습니까?”

 

우리가 아직도 살아있군요.”

 

당신도 아직 살아 있군요!”

 

나도 아직 살아 있습니다.”

 

1746년 찰스 웨슬리는 이 인사말로 찬양을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우리가 아직도 살아있는가입니다. 이 찬양은 감리교 설교자 총회 개회 찬송으로 불렀습니다. 이 찬송은 당시 감리교 설교자들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살아서 서로 얼굴을 보다니 주님의 은혜라

지난 모임 이후 온갖 환란 핍박당해도 은혜로 이겼네

주 예수 변찮는 큰 사랑 베푸사 이때껏 인도하셨고 늘 인도하시네

4. 구주의 권능을 힘입어 살았네 그 은혜 찬송하려고 이곳에 모였네

 

이 찬송가는 한국교회 통일 찬송가에도 실렸습니다. 280생전에 우리가 또다시 모였네라는 제목으로 실린 찬송입니다.

 

이 찬송의 가사는 존 웨슬리와 감리교 설교자들이 얼마나 심한 핍박과 고난과 위험 속에서 전도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총회에서 동역자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기적 같은 은혜로 여겼던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52년간 전도 여행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18마리의 말을 탔습니다. 말들은 늙어서 죽기도 했고 병들어 죽기도 했고 다쳐서 죽기도 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말을 타고 다녔지만 늙어서는 마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라텐베리는 존 웨슬리를 주님의 말을 타는 사람(The Lord’s horseman)’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말을 천천히 걸어가게 하면서 말 위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말안장을 서재의 의자처럼 사용하는 법을 배워서 말고삐를 말의 목에 올려놓고 책읽기에 집중했습니다. 1770년 말을 타고 독서하는 것에 대해 존 웨슬리 스스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말 잔등에서 독서하는 동안 말이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말고삐를 말목에 걸어놓고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독서에 열중하면서 10마일을 가도 책 읽는 동안에 말이 비틀거리지 않습니다. 말고삐를 꽉 잡아야 한다는 것은 큰 착오입니다. 그러나 어떤 말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존 화이트헤드는 존 웨슬리가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승마 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는 말을 사랑하여 언제나 말에게 자비와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설교자 총회에서 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타고 다니는 말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부려 먹지만 말고 잘 쓰다듬어주고 잘 먹이고 잘 재우십시오.”

 

전도 여행에서 말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말의 상태와 건강은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존 웨슬리의 경우, 말이 약하여 길을 가다가 주저앉아버린 적도 있었고 병들어 죽은 적도 있었고 달리다가 나뭇가지에 눈이 찔려 장님이 되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때로 폭도들이 말을 공격하거나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눈을 다치게 하거나 아예 훔쳐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존 웨슬리는 먼 길을 걸어가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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