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36) 복음의 위대한 능력을 나타낸 감리교
감리교 부흥 운동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영국 사회에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1777년 런던 감리교 본부 파운더리 예배당 기도실 정초식에서 존 웨슬리는 감리교 부흥 운동이 영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감리교 부흥 운동은 모든 남녀노소를 초월하여 모든 사회계층을 변화시켰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반대하는 악한 무리도 변화시켰습니다. …… 사람들은 철저하게 죄를 회개했고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하여 그들이 육체 안에 있는지 육체 밖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으로 세상이 주는 공포와 시련을 이기고 인류에게 겸손과 사랑과 선의로 성결의 열매를 보여주었습니다. 이토록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의 삶에 깊은 참회, 강한 신앙, 불붙는 사랑, 순전한 성결이 이루어진 것을 지난 수 세기 동안 본 적이 없습니다.”
몇 년 후 존 웨슬리는 콘월과 런던과 옥스퍼드에서도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여러 성공회 교회에 설교하도록 초청받게 됩니다. 웨슬리는 자신을 대하는 성직자들과 교인들의 친절에 감동하게 됩니다.
“나는 가는 곳마다 신자들과 지역 사람들의 친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가락질도, 비난도 조롱도 없습니다. 이제 정말 십자가의 고난은 끝난 것인가요?”
런던에 있는 수많은 성공회 교회들이 존 웨슬리에게 강단을 개방하고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브리스톨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브리스톨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인 성 메리 레드클리프 교회는 존 웨슬리에게 강단을 활짝 열어주었고 존 웨슬리는 그 교회에서 설교할 때마다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브리스톨 시장은 존 웨슬리를 식사 자리에 초대해서 존경과 감사를 표했고, 시의원 전체를 참석시켜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듣게 했습니다. 뉴악크 시장은 존 웨슬리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식사를 대접하며 기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북부 산업지대 도시들도 존 웨슬리를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그 지역 광부들과 산업 노동자들은 존 웨슬리를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로 맞아주었습니다.
이제 존 웨슬리는 고향 웹윗 성공회 교회도 마음 놓고 가서 설교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교구 성직자와 지역 주민들의 친절한 접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공회 주교들도 존 웨슬리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했습니다. 영국 서부의 도시 엑세터의 주교는 존 웨슬리를 식사 자리에 초대해서 융숭하게 대접을 했습니다. 글로스터 주교도 존 웨슬리를 정중하게 초대하여 지역 교구 성직자들과 함께 존 웨슬리를 향한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런던의 성공회 주교 로버트 로우스는 존 웨슬리를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해서 존 웨슬리의 인격에 감동을 받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 제가 천국에서 당신의 발밑에라도 앉을 수 있을까요?”
말년의 존 웨슬리는 영국 전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변화를 존 웨슬리는 감리교인들이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성하고 그리스도의 인내와 평화와 사랑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며 원수까지 사랑한 결과라고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존 웨슬리는 주교들과 시장들과 사회 지도자들과 상류층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변함없이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사도로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