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40) 노동자들과 어린이들의 회심

(존 웨슬리 이야기 40) 노동자들과 어린이들의 회심

시온 0 377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사회적 계층을 볼 때 매우 다양했습니다.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듣고 많은 광산 노동자들이 회심했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것은 광산업이었습니다. 석탄, 주석, 알루미늄, , 아연, 구리, , 은 등을 캐는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했고 하루 12시간 이상 고된 광산에서 일을 하면서도 적은 임금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무질서한 사람들이었고, 일부는 폭도로 변해서 사회적으로 위험한 세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감리교 부흥 운동 초기부터 광산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야외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들은 노동자들은 회심하여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경건하고 성실한 사람들로 변화되었습니다. 광산지역과 산업지대에는 감리교 신도회가 많이 생겨났고 그 지역에는 오늘날까지 감리교 교회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광산 지역과 공장지대에는 감리교 속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19세기 이 지역에 노동조합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날 때 대부분의 노동조합운동의 지도자들은 감리교 설교자들과 속장들이었습니다.

 

 

또 존 웨슬리의 회심자 중에는 어린이들이 많았습니다. 1785년 존 웨슬리는 더블린에서 쓴 일기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께로 회심한 어린아이들의 수가 참으로 많은 것이 놀랍습니다. 13~14세밖에 안 된 어린이들이 마치 30~40세 된 어른들처럼 진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했습니다. 수많은 어린이 회심자들이 계속 참된 경건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드웰 레메 메이슨이란 16살 된 여자아이는 런던 파운더리 예배당에서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듣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그날 날씨 때문에 존 웨슬리의 여행이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실망하여 그냥 돌아갔지만, 이 아이는 끝까지 기다렸다가 마침내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80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파운더리 예배당의 충성된 감리교인으로 살면서 수많은 어린이를 전도하여 파운더리 예배당을 1,000명이 넘는 교회학교 어린이들로 가득 차게 만들었습니다.

 

뉴캐슬과 북부 산업지대에서는 어린이 회심자들이 너무 많아서 어린이 속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어린이가 속장이 되어 속회를 지도하고 스스로 속회를 운영해 나갔습니다.

 

브리스톨과 런던의 파운더리와 런던의 동북부 슬럼 지역에서는 어린이 회심자들이 특별히 많아서 주일학교 방이 모자라서 교사들이 자기 집으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가르쳤습니다.

 

감리교 부흥 운동에는 어린이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감리교 성도들은 교회학교를 설립하고 어린이 전도와 교육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1750년대 후반부에는 감리교 주일학교들이 주간학교로 발전하여 초등학교 형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영국의 초등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1800년대 초에는 성인 감리교 성도들의 수가 약 10만명 정도였는데, 감리교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약 10만명이 되었습니다. 1900년대에는 약 100만 명의 어린이들이 감리교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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