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17)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웨슬리 부흥 운동
웨슬리 부흥 운동이 가장 성공적으로 일어난 지역은 영국 서남부 지역의 끝에 있는 콘월 지방이었습니다. 이곳은 영국 국교회보다 감리교 교회가 훨씬 더 많았던 지역이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무작정 계획 없이 전도하러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는 치밀한 전략을 짜서 지혜롭게 전도 운동을 펴나갔습니다. 그는 세 도시를 웨슬리 부흥 운동의 핵심 도시로 정했습니다. 브리스톨과 런던과 뉴캐슬이었습니다.
브리스톨은 영국 남서부 지역의 중심지였고 런던은 수도권과 남동부의 중심지였고 뉴캐슬은 영국 부부 탄광 지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는 세 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에 가면 그곳에 충분히 머물면서 열심히 전도하여 신도회를 조직했습니다. 그런 다음 멀리 가기보다 인근 지역으로 전도를 나가서 지역적으로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었습니다.
1751년 존 웨슬리는 처음으로 영국 국경을 넘어서 스코틀랜드로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후 그는 스코틀랜드로 22번의 전도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는 87세의 나이에도 스코틀랜드로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스코틀랜드 전도 여행이었습니다.
이 여행에서 존 웨슬리는 최고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작은 감리교 신도회를 설립했고, 장로교회의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스코틀랜드와 노르웨이 사이에 길게 뻗은 셰틀란드 섬에도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감리교 신도회가 설립되었고, 지금도 그 섬에는 감리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는 아일랜드로도 전도 여행을 많이 갔습니다. 일생 동안 무려 42번이나 아일랜드 전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은 가난하고 멸시받는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더욱 더 열정적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존 웨슬리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성 패트릭 이후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존 웨슬리를 인정했고 존경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존 웨슬리를 가장 존경했던 사람들은 군인들이었습니다. 군인들은 웨슬리가 방문할 때마다 웨슬리를 설교 자리로 초대 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웨일즈 지역에는 한 번밖에 가지 않았습니다. 존 웨슬리가 웨일즈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웨일즈 말을 잘했던 하웰 해리스(Howell Harris)에게 웨일즈 전도를 맡겼습니다. 또 조지 휫필드가 웨일즈 말을 잘했기 때문에 웨일즈 선교는 조지 휫필드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웨일즈 지역에는 조지 휫필드의 전도를 받은 칼빈주의 감리교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존 웨슬리는 영국 본토뿐만 아니라 영국의 모든 섬에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그는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찾아가 전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섬은 존 웨슬리의 중요한 선교지가 되었고, 그 결과 지금도 섬마다 감리교회들이 많이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으며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을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감리교 신도회에 속해 신앙의 지도를 받았고, 웨슬리는 방문할 때마다 그들을 격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