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18) 주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에 순종한 웨슬리
존 웨슬리의 생애를 볼 때, 그가 행한 위대한 일들은 대부분 그가 적극적으로 원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성회를 만든 것도 동생 찰스 웨슬리가 시작한 것이고 그는 후에 동생의 권유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회심 사건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모라비안 교도들의 기도회에 참여했다가 일어난 것입니다. 감리교 부흥 운동의 출발이 된 야외 설교도 조지 휫필드의 강권 때문에 마지못해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심했습니다. 이런 성격으로 야외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성령에 붙들여 야외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소심한 성격을 초월하여 그를 강권적으로 붙들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위대한 점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과 계획을 거부하지 않고 순종하며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몹시 소심했고 때로는 지나치게 사려 깊고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단번에 달려드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정이 느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결정하고 시작한 일은 빈틈없이 정확하고 철저하게 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성격은 조지 휫필드의 성격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조지 휫필드는 글로스터 빈민가의 여관집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잘 아울리는 적극적이고 활달하고 대담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야외 설교에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존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 교수 스타일로 조용한 성품의 신사였습니다. 그가 길거리나 광산 구덩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성격상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돈이 많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당시 영국 사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회적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소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가 야외 설교를 하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야외 설교자로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과 헌신과 열정과 정직하고 순결한 성품을 가진 그를 택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어릴 때부터 계속 이어 온 완전한 성결을 향한 경건과 옥스퍼드 대학의 학문과 잘 정돈된 이성적 사고를 하는 그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야외 설교를 시작하면서 하루에 많게는 5번씩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설교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때로는 10,000명, 20,000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에게 설교했던 거리의 전도자였습니다. 그가 최고 많은 사람에게 설교한 곳은 영국 남부 콘웰 피트라는 광산 웅덩이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32,000명의 사람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는 휫필드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설교를 하지는 못했지만 맑고 깨끗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설교함으로 멀리서도 그의 설교를 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언제나 논리정연했고 설득력이 뛰어나 누구든지 한번 듣기 시작하면 끝까지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1791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약 52년간 매년 평균 800번을 설교했고 총 40,000번 이상 설교를 했습니다. 매년 80,000km를 순회하며 설교했고, 2년에 한 번씩 영국 본토와 아일랜드 섬 전체를 돌았습니다. 그는 평생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거리를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불타는 가슴으로 복음을 전했던 노방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