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21)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바라본다
존 웨슬리의 야외 설교를 통해 감리교 부흥 운동은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감리교 부흥 운동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사람에 의한 가난한 사람들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영국 사람들 대부분은 감리교 부흥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성공회 성직자들과 일부 상류층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존 웨슬리의 야외 설교를 성공회에 전례가 없는 일로 성직자의 품위와 명예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1739년 3월 존 웨슬리와 신성회(Holy Club) 활동을 함께 했던 제임스 허비(J. Hervey)는 편지로 존 웨슬리의 야외 설교를 심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존 웨슬리에게 야외 설교를 속히 그만두고 옥스퍼드 대학으로 돌아와 교수가 되든지 아니면 일반 교구의 사제가 되어 조용히 목회 활동을 할 것을 강력하게 권면했습니다.
1739년 3월 20일 존 웨슬리는 허비에게 이런 답장을 보냈습니다.
“나는 신앙이나 그 실천에 있어서 영국 국교회의 규칙보다 더 높은 성경의 원칙을 따른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고 사악한 자들을 개혁하고 선한 자들을 더욱 선하게 만들라고 명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랴 사람의 말을 들으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옳으냐? … 만약 내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을 설교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이므로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가 등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이 편지에서 존 웨슬리는 자신의 목적은 예배당 안에서든지 밖에서든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합니다.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바라본다(I look upon all the world as my parish).”
그는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고 복음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서든지 가서 설교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선언은 후에 감리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1739년 8월 존 웨슬리는 브리스톨 주교인 조셉 버틀러(J. Butler)를 두 번이나 만나서 면담을 했습니다. 조셉 버틀러는 ‘종교의 유비’라는 책을 쓴 유명한 신학자요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존 웨슬리에게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설교할 수 없으니 브리스톨을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자신이 지상에서 할 일은 어디서나 선을 행하는 것이고 선을 행할 수 있는 곳에는 언제까지나 머물러야 하기에 떠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조셉 버틀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우주적인 교회(Universal Church)의 사제입니다. 또 저는 옥스퍼드 링컨 대학의 교수로 성직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특수한 교구에서 목사로 임명되지 않았으므로 영국 국교회 어느 교구에서도 설교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존 웨슬리는 다시 한번 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