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5) 회심 이후의 삶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에 회심한 웨슬리는 모라비안 형제들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길 원했습니다. 1738년 여름 웨슬리는 벤자민 잉햄(Benjamin Ingham)과 요한 퇼치히(Johan Töltschig)와 함께 모라바안 형제들의 정착지인 헤론후트로 여행을 떠납니다. 헤른후트(Herrnhut)는 '하나님의 피난처' 또는 '하나님의 오두막'이란 뜻입니다.
1738년 7월 4일 웨슬리는 헤른후트로 가는 도중에 모라비안 형제들의 선교센터가 있는 마리엔본(Marienborn)에 도착하게 됩니다. 마침 그때 모라비안 형제회를 세운 진젠도르프 백작이 그곳에 머물러 있어서,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7월 말 그는 바이마르(Weimar)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도시를 지키는 문지기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당신은 왜 헤른후트에 가려고 합니까?”
웨슬리는 주저없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사는 곳을 방문하고 싶습니다.”
1738년 8월 1일 웨슬리와 친구들은 헤른후트에 도착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모리비안 형제들의 고백과 간증을 듣게 됩니다. 그는 크리스천 데이비드의 간증을 듣고 신앙적인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 크리스천 데이비드는 회심 이후에도 자신 안에 죄가 남아있지만 자신이 죄에게 지배당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고백했습니다.
웨슬리는 크리스천 데이비드의 간증을 통해 깨달은 것을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그때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처음 약속은 죄가 나를 더 이상 지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대신 죄를 용서 받을 때부터 내 안에 죄를 느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죄를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내 안에 동요하고 있고 때로 내가 넘어질 만큼 죄의 상처가 나를 찌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죄를 용서 받지 못했다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때로는 내가 넘어질 수 있다는 아픔이 밀려 왔습니다. 죄가 지배하지는 않았어도 죄가 내 안에 남아 있었고, 죄에 정복을 당하지는 않았어도 지속적으로 죄의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깨달음은 웨슬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처음 회심했을 때 자신이 모든 죄에서 실제적으로 완전히 깨끗하게 되었다는 기대를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 이후에 회심 이후에도 죄의 유혹은 여전히 자신의 마음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1738년 10월 웨슬리는 헤른후트에 다녀와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이 점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욕망들이 제 마음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욕망들이 제 마음을 지배하지는 않습니다.”
회심한 이후 우리는 죄에 대한 모든 것에서 완벽하게 자유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에서 용서를 받았지만 죄의 유혹은 여전히 우리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회심한 이후 성령을 의지하여 죄의 유혹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회심한 이후에도 죄와의 싸움은 변함없이 계속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