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10) 웨슬리 이전 부흥의 선구자들
감리교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18세기를 ‘3R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olution)’, 무신론과 합리주의 철학에 발달한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 수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부흥의 시대(The age of Revival)입니다.
존 웨슬리의 부흥 운동 이전에 많은 부흥의 선각자들이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모라비안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신앙을 기초로 신생의 체험과 성령의 증거에 의한 구원의 확신을 강조했습니다. 성령의 체험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강조했고 성도들을 신도회(Society)와 반회(Band)로 조직해서 교제를 나누며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큰 규모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소 종파(sect)의 형태로 남게 되었습니다.
1729년 미국에서는 노스햄프턴(Northampton)에서 대각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심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있었습니자. 그는 존 웨슬리의 신성회 회원 중 하나였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를 초청해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후 자신의 설교에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과 참된 회심을 강조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로 회개하며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흥은 대학교로 옮겨가 수많은 대학생이 회심하고 해외선교사로 자원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회심할 때마다 울부짖고 몸을 떠는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고 환상과 음성과 계시와 방언과 입신 등 신비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영국 서부 웨일즈 지방에서는 평신도 설교자였던 ‘하웰 해리스(Howell Harris, 1714-1773)’를 통해 성령의 강력한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해리스는 1735년 21세의 나이에 회심을 하게 되고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대학의 도덕적 타락을 보고 실망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는 평신도로 진정한 회심을 촉구하는 설교를 하면서 웨일즈 전역을 다니게 됩니다. 지방 관리들과 성직자들은 그가 설교하지 못하도록 방해했으나 그의 설교에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회심했고 그리스도께 헌신한 제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해리스는 회심한 사람들을 모아서 신도회를 결성했고 가는 곳마다 학교를 세웠습니다. 1739년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카디프에서 해리스를 만나서 그를 다음과 같이 극찬했습니다.
“그는 불타오르며 번뜩이는 빛이며 신성모독과 도덕적 타락을 막는 파수대이며 지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신입니다.”
해리스의 부흥운동은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나아가 감리교 부흥운동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740년에는 스코틀랜드에서도 놀라운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임스 로브(Jams Robe) 목사는 종교개혁자 칼빈의 영향을 받아 개인의 실천적 중생과 사회적 중생을 촉구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복중부 스코틀랜드를 순회하며 설교했고, 그 결과 사회가 실제로 변화해서 술집과 술주정뱅이들이 사라졌고 가족기도회가 생겨났고 교회마다 기도회와 성경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스코틀랜드에도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신비한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