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12) 야외설교를 시작한 존 웨슬리

(존 웨슬리 이야기 12) 야외설교를 시작한 존 웨슬리

시온 0 1188


17393월 초에 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할 수 없게 된 존 웨슬리는 조지 휫필드에게 브리스톨에 와서 야외에서 설교할 것을 강력하게 제안하는 편지를 받습니다.

 

광부들을 위해서 영광스러운 문이 열러 있습니다..... 당신은 속히 와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심어 놓으신 것에 물을 주어야 합니다.”

 

322일 휫필드는 더 강력한 어조로 존 웨슬리에게 야외 설교에 참여하도록 편지를 보냅니다.

 

만일 형제들이 어떤 방향으로 결정하기 위해 기도하고 나서 올바르게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당신이 늦어도 다음 주말까지는 여기에 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휫필드는 323일에도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냅니다.

 

나는 당신이 다음 주에 브리스톨로 바로 와주기를 간청합니다. 오늘 신문에 광고가 나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당시 조지 휫필드는 존 웨슬리보다 먼저 야외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가 좋고 삼손처럼 힘이 센 건강 체질이었숩나다, 활달한 성격에 야심도 큰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하류층 출신으로 기적적으로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존 웨슬리와 함께 신성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사시였으며 존 웨슬리보다 열한 살이나 아래였습니다.

 

조지 휫필드는 존 웨슬리보다 3년 먼저 회심을 경험합니다. 회심을 체험한 후에 웨일즈에서 큰 부흥의 통로가 되었던 하웰 해리스를 만납니다. 그곳에서 그는 야외설교와 전도 방법을 배웁니다.


휫필드는 브리스톨과 킹스우드의 가난한 노동자들과 광부들을 찾아가 야외에서 설교를 합니다. 휫필드는 언변이 화려하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배우와 같은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가 얼마나 감동적이고 능력이 많았는지 수천 명에서 최대 30,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는 미국에 고아원을 세우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아원을 위한 모금 운동이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어서 브리스톨과 킹스우드애서 부흥운동을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존 웨슬리를 최고의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존 웨슬리에게 편지를 보내서 야외 설교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반면 존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 성직자로써 야외 설교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존 웨슬리에게 야외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은 국교회의 전통과 규칙을 깨뜨리는 일이었고, 아주 몰상식한 행위였습니다. 존 웨슬리가 야외에서 설교를 한다면 사람들의 비난과 모욕을 받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존 웨슬리가 야외 설교를 주저했던 또 다른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험하고 고달픈 야외 설교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신도회 회원들과 이 문제를 놓고 상의를 했습니다. 신도회 안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게 되자 그는 신약성경의 전통을 따라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로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야외설교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존 웨슬리는 1739329일 브리스톨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휫필드를 만났고 휫필드가 야외에서 설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휫필드는 존 웨슬리에게 야외 설교 방법을 간단하게 시범을 보여주고는 바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173942일 월요일 오전 4시에 브리스톨 공터에서 약 3,000명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게 됩니다. 존 웨슬리의 야외 설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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