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30) 강하고 담대한 감리교 설교자들

(존 웨슬리 이야기 30) 강하고 담대한 감리교 설교자들

시온 0 117


존 감리교 부흥 운동이 크게 확산하면서 많은 감리교 설교자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감리교 설교자들은 대부분은 아주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폭도들에게 구타당하기도 하 돌에 맞아 깨지 피를 흘리 강물이나 시궁창에 던져지 질질 끌려다니 몰매를 맺 산속이나 외딴곳에 버려졌습니다.

 

감리교 설교자들은 모든 소유를 폭도들에게 다 빼앗기 말도 빼앗긴 채 구사일생으로 오랜 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폭도들은 감리교 설교자들의 머리를 오물과 진흙 구덩이에 처박 몽둥이로 마구 때려 거의 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찰스 웨슬리가 전도해서 감리교 설교자가 된 휫필드의 친구인 윌리엄 슈워드는 초창기부터 감리교 신도회 발전에 많이 봉사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감리교 최초의 예배당인 브리스톨의 뉴룸을 건축할 때 가장 많은 헌금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웨일즈 지방 전도에도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뉴포트에서 설교할 때 폭도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헤이 온 와이에서 설교하는 도중에 폭도들이 던진 큰 돌에 맞아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 결국 며칠 후에 죽 맙니다. 슈워드는 감리교 최초의 순교자였습니다.

 

충성된 감리교인 존 넬슨의 부인은 폭도들에게 매를 맺 불구자가 되어 평생 누워 살았습니다. 그의 아이들도 폭도들에게 맞아서 죽었습니다. 


남편 존 넬슨은 광부로 새벽부터 일하 저녁에 야외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폭도들에게 잡혀서 작은 방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갇힌 상태에서 이렇게 외치며 설교를 했습니다.

 

내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나에게는 이곳도 천국입니다.”

 

넬슨은 헌팅돈 부인의 도움으로 석방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마터는 1757년 말이 병들어 눈길에 빠지자 12마일을 걸어갔습니다. 존 웨슬리와 존 넬슨은 산속에서 길을 잃 밖에서 잠을 자면서 산딸기로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산속 마을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수십 마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피터 제이코는 야외 설교를 하다가 폭도들에게 매를 맞아 피를 많이 흘리며 죽었습니다. 존 퍼드는 폭도가 쏜 총에 맞아 죽은 줄 알았으나 깨어나 보니 총알이 머리를 스치 지나가 살았습니다. 크리스토퍼 호퍼는 소똥 세례를 받 발로 마구 짓 밝혀 시궁창에 던져졌습니다. 토마스 리는 머리가 깨져서 불구자가 되었으나 야외 설교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감리교 설교자들에게 폭도들과 반대자들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폭력으로 대응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감리교 설교자들에게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가르쳤습니다. 감리교 설교자들은 사랑과 온유와 친절로 폭도들을 대했 그 결과 많은 폭도가 감동을 하 감리교 설교자들과 감리교회를 보호하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감리교 설교자들은 강하 담대했습니다. 그들은 믿음과 용기와 사랑으로 폭도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많은 폭도가 감리교 설교자들이 전하는 말씀에 회개하 감리교인이 되었습니다. 폭도가 변하여 속장이 되 설교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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