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9) 웨슬리 시대 영국의 현실

(존 웨슬리 이야기 9) 웨슬리 시대 영국의 현실

시온 0 534


1740년 존 웨슬리가 영국에서 감리교를 시작할 때 영국의 상황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영국 수도 런던의 인구는 약 60만 명 정도였습니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많은 사람이 이주했습니다. 1720년부터 1740년까지 런던의 인구는 3배나 증가했습니다.

 

런던의 주택은 턱없이 부족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갔습니다. 집 없는 사람들과 버려지거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일을 찾는 노동자들도 점점 더 늘어갔습니다. 도시는 무질서했고 강도와 절도가 나날이 늘어났습니다.

 

런던 주변에는 5개의 감옥이 있었는데 모두 포화상태였습니다. 런던에 크고 작은 극장들이 많았는데 건전하지 못한 행위들을 하는 극장들도 많았습니다. 술집과 공창 사창가 지역은 점점 더 넓혀져 갔습니다.

 

런던 동북부 지역 사람들은 술과 도박과 닭싸움과 개싸움 등에 빠져 살았습니다. 당시 런던은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또는 니느웨와 바벨론 같이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감리교 부흥 운동의 중심지였던 브리스톨(Bristol)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브리스톨 주변에는 석탄과 주석 광산이 많았습니다. 영국 서남부 항구 도시였던 브리스톨로 아프리카와 중남미 자메이카 등에서 수많은 노예가 끌려왔습니다.

 

항구 옆 광장에는 흑인 노예들의 신체에 등급을 매기는 시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흑인 소년의 언덕(black boy hill)’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시장을 경계로 바로 옆에 백인 숙녀의 길(White lady road)’이라고 불리는 거리도 있었습니다. 흑인은 그 땅을 밟기만 해도 백인들에게 붙잡혀 혹독한 벌을 받거나 감옥에 가야만 했습니다.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영국 북부 지역에는 석탄, , 주석, 알루미늄, , 구리 등을 캐는 광산이 개발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왔는데 영국 정부는 그들을 위한 주거, 식량, 의료, 교육 등을 해결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거리마다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노동자들과 집 없는 사람들과 알코올 중독자들과 버려진 아이들과 불량 청소년들로 넘쳐 났습니다.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도시에는 폭도들이 자주 나타나 강도와 절도와 강간과 도둑질 등의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와 권력은 왕족들과 상류 계급과 중류 계급들이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80%에 해당하는 노동자 계급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노동을 강요받고 있었습니다.

 

광산과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이들과 여자들은 심한 노동으로 병들어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노동자 중에는 일부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귀족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실수를 해도 바로 감옥에 보내거나 엄청난 벌금을 매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 중에는 막대한 부채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리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감리교가 시작될 때 영국은 어느 시대보다 혼란하고 무질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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