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19) 가난한 자들의 목자가 된 웨슬리

(존 웨슬리 이야기 19) 가난한 자들의 목자가 된 웨슬리

시온 0 301


존 웨슬리는 가난한 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전체 인구의 80%가 가난한 노동자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부와 상류층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영국 사회는 그들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차별했습니다. 심지어 종교에서도 차별받았습니다.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악하고 게으르고 거칠고 난폭하고 술 잘 마시고 도둑질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 대부분은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자포 자기한 상태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했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루 벌어서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그것마저 할 수 없을 때는 일을 찾아 온종일 거리를 헤매고 다녀야 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이런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존 웨슬리에게 가난한 사람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은 완전한 성화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자비의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위해 거리에서 설교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가난한 사람들은 웨슬리를 좋아했고 존경했습니다.

 

존 웨슬리에게 진정한 기독교란 예배와 성례전과 기도와 성경 연구와 금식 등을 규칙적으로 행하는 경건의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기독교란 잃어버린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고통에서 건져주는 사랑의 실천이 바로 진정한 기독교의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광산지역과 빈민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평생 가난한 자들의 목자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었고, 동시에 가난한 사람을 향한 사랑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 주교들과 성직자들의 반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야외 설교를 열정적으로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은 야외 설교는 교회를 파괴하고 성직자의 품위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은 자기 교인들이 감리교인이 되어 교회를 떠나게 될까 걱정했고 동시에 존 웨슬리의 부흥 운동을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은 설교 시간마다 존 웨슬리와 그의 설교 방법을 비난하고 악평했습니다.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은 존 웨슬리가 야외 설교를 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방해했습니다. 교구 교회 근처에서는 웨슬리가 설교하지 못하게 했고 야외 설교 장소에 장애물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짐승의 배설물을 뿌리기도 하고 불량배들을 동원해서 설교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설교 중에 돌이나 막대기를 던지기도 하며 설교자와 모인 회중들을 공격했습니다.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은 국교회에 속한 모든 교회에서 존 웨슬리가 설교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럴수록 존 웨슬리는 더욱더 야외 설교에 힘썼습니다. 그는 국교회 모든 교회에서 설교하지 못하도록 문을 닫았기에 교회 밖으로 나가서 설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교회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든 예배당 밖에서 이루어지든 상관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영혼은 예배당 밖에 더 많이 있기에 야외 설교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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