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30) 강하고 담대한 감리교 설교자들

(존 웨슬리 이야기 30) 강하고 담대한 감리교 설교자들

시온 0 574


존 감리교 부흥 운동이 크게 확산하면서 많은 감리교 설교자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감리교 설교자들은 대부분은 아주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폭도들에게 구타당하기도 하고 돌에 맞아 깨지고 피를 흘리고 강물이나 시궁창에 던져지고 질질 끌려다니고 몰매를 맺고 산속이나 외딴곳에 버려졌습니다.

 

감리교 설교자들은 모든 소유를 폭도들에게 다 빼앗기고 말도 빼앗긴 채 구사일생으로 오랜 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폭도들은 감리교 설교자들의 머리를 오물과 진흙 구덩이에 처박고 몽둥이로 마구 때려 거의 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찰스 웨슬리가 전도해서 감리교 설교자가 된 휫필드의 친구인 윌리엄 슈워드는 초창기부터 감리교 신도회 발전에 많이 봉사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감리교 최초의 예배당인 브리스톨의 뉴룸을 건축할 때 가장 많은 헌금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웨일즈 지방 전도에도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뉴포트에서 설교할 때 폭도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헤이 온 와이에서 설교하는 도중에 폭도들이 던진 큰 돌에 맞아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결국 며칠 후에 죽고 맙니다. 슈워드는 감리교 최초의 순교자였습니다.

 

충성된 감리교인 존 넬슨의 부인은 폭도들에게 매를 맺고 불구자가 되어 평생 누워 살았습니다. 그의 아이들도 폭도들에게 맞아서 죽었습니다. 


남편 존 넬슨은 광부로 새벽부터 일하고 저녁에 야외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폭도들에게 잡혀서 작은 방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갇힌 상태에서 이렇게 외치며 설교를 했습니다.

 

내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나에게는 이곳도 천국입니다.”

 

넬슨은 헌팅돈 부인의 도움으로 석방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마터는 1757년 말이 병들어 눈길에 빠지자 12마일을 걸어갔습니다. 존 웨슬리와 존 넬슨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밖에서 잠을 자면서 산딸기로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산속 마을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수십 마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피터 제이코는 야외 설교를 하다가 폭도들에게 매를 맞아 피를 많이 흘리며 죽었습니다. 존 퍼드는 폭도가 쏜 총에 맞아 죽은 줄 알았으나 깨어나 보니 총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살았습니다. 크리스토퍼 호퍼는 소똥 세례를 받고 발로 마구 짓 밝혀 시궁창에 던져졌습니다. 토마스 리는 머리가 깨져서 불구자가 되었으나 야외 설교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감리교 설교자들에게 폭도들과 반대자들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폭력으로 대응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감리교 설교자들에게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가르쳤습니다. 감리교 설교자들은 사랑과 온유와 친절로 폭도들을 대했고 그 결과 많은 폭도가 감동을 하고 감리교 설교자들과 감리교회를 보호하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감리교 설교자들은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그들은 믿음과 용기와 사랑으로 폭도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많은 폭도가 감리교 설교자들이 전하는 말씀에 회개하고 감리교인이 되었습니다. 폭도가 변하여 속장이 되고 설교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