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34) 찰스 웨슬리의 찬송 사역

(존 웨슬리 이야기 34) 찰스 웨슬리의 찬송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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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웨슬리는 존 웨슬리의 4살 어린 동생입니다.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는 남다른 형제애로 감리교부흥 운동을 함께 이끌었습니다.

 

찰스 웨슬리는 많은 찬양을 작사했습니다. 그는 평생 약 9,000편의 찬송을 작사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감리교부흥 운동에는 2가지 영광스러운 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존 웨슬리의 설교 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찰스 웨슬리의 찬송 소리였습니다.

 

존 웨슬리의 설교와 찰스 웨슬리의 찬양은 초기부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초기부터 찰스의 찬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역사가 중에는 감리교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하는 분이 있습니다.

 

감리교는 노래 속에서 태어났다.

(Methodism was born into songs).

 

감리교부흥 운동이 전개되면서 설교로 회심한 사람보다 찬양을 통해 회심한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역사가들은 존 웨슬리의 설교를 통해 한 사람이 회심했다면 찰스 웨슬리의 찬송을 통해 두 사람이 회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감리교 설교자들의 설교가 1마일을 갔다면 감리교 찬양은 2마일을 갔다고도 증언했습니다.

 

감리교부흥 운동을 존경했던 영국 성공회 성직자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한 사람이 교리에 끌려 왔다면 열 사람은 음악에 끌려 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존 웨슬리의 설교보다 찰스 웨슬리의 찬송에서 성경적인 참된 교리와 감리교 신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찰스 웨슬리의 찬양은 시와 노래로 만들어진 감리교 교리이자 감리교 신학이었습니다.

 

존 웨슬리 형제는 평생 60여권의 찬송집을 출판했습니다. 감리교인들은 찰스 웨슬리의 찬송시를 통해 기독교 교리와 신앙생활을 배웠습니다.

 

당시 영국 성공회에는 일반 성도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찬송이 없었습니다. 주일 예배 때 성가대는 라틴어로 된 찬송을 불렀습니다. 찰스 웨슬리는 성경 말씀과 복음적인 신앙을 시와 노래로 쉽게 친근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대중적인 민요나 서정적인 가락을 사용해서 찬송을 만들었기에 일반 대중의 가슴속에 친근하게 다가갔습니다.

 

존 웨슬리는 원래 옥스퍼드 대학의 학자로 그의 설교 내용은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충실하고 논리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도 설교를 쉽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감성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존의 설교만으로는 사람들의 메마르고 강퍅한 마음을 감동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찰스 웨슬리의 감미로운 시와 노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찰스 웨슬리의 찬송을 들으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찰스의 찬송은 보통 사람들에게 마음의 신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의 찬송은 누구든지 쉽고 재미있게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찬송이었습니다.

 

찰스 웨슬리의 찬송은 마음 속 신앙의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감리교인을 보면 거룩한 가수들, 달콤한 가수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처음부터 감리교인은 노래하는 사람들이었고 감리교회는 노래하는 교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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