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47) 감리교 연합신도회의 시작

(존 웨슬리 이야기 47) 감리교 연합신도회의 시작

시온 0 141


존 웨슬리는 회심자가 생기면 그 사람을 신도회에 넣어서 철저히 돌보도록 했습니다. 회심자가 늘어나자 신도회도 계속 늘어났습니다. 처음 생겨난 신도회는 런던 파운더리(Foundery) 신도회와 브리스톨(Bristol) 신도회였습니다.

 

파운더리 신도회는 페터레인 신도회에서 존 웨슬리를 따라 나온 신자들이 모여 시작됐습니다. 런던 북부 가난한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곳인 무어필드에 있는 폐업한 무기공장을 임대해서 사용하다가 그 건물을 파운더리 신도회에서 사게 됩니다. 건물을 사서 개조하여 예배당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파운더리 예배당(Foundery Chapel)입니다.

 

이 예배당에는 66개의 속회가 모이는 방들과 1,500명이 모이는 집회실, 주일학교, 주간학교, 존 웨슬리의 거실과 수산나의 거실, 설교자 숙소, 약방, 진료소, 신자들의 친교실, 상담실, 신용조합 등이 있었습니다.

 

파운더리 신도회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1741년에는 약 1,000명이 되었습니다. 매일 새벽 성경강해 기도회에는 약 300명이 참석했습니다. 이 장소는 곧 감리교 런던 본부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브리스톨(Bristol) 신도회는 17394월에 시작되었습니다. 브리스톨 회심자들이 서로의 잘못을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구원을 이루어 가기 위해 매주 1회씩 정기적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도의 숫자가 급증하면서 브리스톨 신도회도 모임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톨 신도회는 뉴룸(New Room)’을 건축하게 됩니다. 뉴룸도 파운더리처럼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나중에 영국 서남부 감리교 센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브리스톨 교인들이 런던의 교인보다 더 가난해서 뉴룸을 건축할 때 많은 빚을 졌습니다. 파운더리나 뉴룸은 영국의 거대한 성당이나 아름다운 예배당에 비해 외형은 아주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감리교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믿음과 사랑의 보금자리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더 치밀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739년 브리스톨에서 연합신도회를 결성합니다. 그 다음 해에는 런던에서도 연합신도회를 결성합니다. 그런 후 1743510일에 전국적인 연합신도회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신도회에 입회 자격은 단 한 가지 소원만 가지고 있으면 됐습니다.

 

다가올 진노를 피하고 죄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 사람

 

이런 소원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신도회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감리교 신도회 회원들은 소속한 교구 교회 주일 예배에 참여했으며 주일 저녁과 매일 새벽 5시 성경 강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존 웨슬리는 연합 신도회의 규칙과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이 모임은 규칙적으로 모여 경건의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며, 함께 권고의 말씀을 받고, 사랑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지켜주어, 서로의 구원을 함께 이루어가며, 서로를 돕기 위하여 모이는 것이다.”

 

연합신도회 회원들은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 할 3가지 큰 규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모든 악을 피하라, 둘째 모든 선을 행하라, 셋째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지키라 등이었습니다. 3가지 큰 규칙 아래 세부적인 실천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3가지 규칙을 철저하게 지킴으로 감리교인들은 당시 영국 사회에서 가장 경건하고 정직하고 근면하고 검소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선을 많이 행하는 사람들로 평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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