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48) 감리교 속회의 시작

(존 웨슬리 이야기 48) 감리교 속회의 시작

시온 0 137


감리교 속회(Class Meeting)1742년 브르스톨 신도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브리스톨 신도회가 신도회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건물을 건축하고 이름을 뉴룸(New Room)이라고 붙입니다.

 

이 건물은 감리교 최초의 예배당이 됩니다. 그런데 신도들이 너무 가난해서 건축 빚을 갚지 못합니다. 존 웨슬리는 빚쟁이들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1742215일 건축 빚을 갚기 위한 회의가 열립니다. 그 회의에서 은퇴한 선장 포이(Foy)가 이런 제안을 합니다.

 

모든 회원은 빚을 갚을 때까지 1주일에 1페니씩 내기로 합시다.”

 

그러나 신도회 회원들 대부분은 너무 가난해서 그 돈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포이가 다시 이렇게 제안을 합니다.

 

회원 중 가장 가난한 사람 11명을 내게 맡겨주십시오. 나는 그들을 매주 1회 방문하겠습니다. 만일 그들 중 누가 돈을 내지 못한다면 내가 대신 그들의 몫을 내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회원 중에도 자신도 11명을 맡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전체 회원들이 이 의견에 동의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11명씩 맡아서 매주 1회 회원들을 방문하여 1주일에 1페니씩 모으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11명씩 맡은 지도자들이 회원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회원들의 영적인 상태와 생활 형편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돈을 모으는 일보다 이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일을 더 우선으로 하게 됩니다.


지도자들은 존 웨슬리에게 신도회 회원들의 사정을 정기적으로 보고하게 됩니다. 그 결과 존 웨슬리는 이들의 보고를 듣고 신도회를 더욱 세심하게 지도할 수 있게 됩니다.

 

존 웨슬리는 지도자들의 보고를 목회 보고(Pastoral Report)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것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감리교 속회(Class Meeting)입니다.

 

1742년 속회는 감리교 신앙과 생활 훈련을 위한 핵심적인 기구로 정착하게 됩니다. 속회를 인도하는 지도자를 속장(Class Leader)이라고 불게 됩니다. 속회는 생겨난 지 두 달 만에 영국 전역으로 확산됩니다. 존 웨슬리는 매일 늘어나는 감리교 신도회 회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을까 고심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속장으로 세워 돌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 제도가 말할 수 없이 유익하다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명백해졌다.”

 

선장 포이의 제안으로 시작된 속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리교 신앙생활에 유익하고 효과적인 공동체 조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속회는 1주일에 1회씩 모여서 속장을 비롯한 모든 회원이 서로에게 일주일 동안의 영적 생활을 고백하고 용서와 위로와 권면을 말씀을 주고받았습니다. 속원들은 기도와 사랑으로 서로를 지켜주었고 마음 따뜻한 친교(Warm-hearted fellowship)로 서로 끊을 수 없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속회는 감리교 성도들을 위한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신앙 훈련 기구가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속회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3개월마다 출석표를 주었습니다. 이 표는 충성된 감리교인의 표시로 인식되어 3개월마다 열리는 애찬회(love feast)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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