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58) 예정론자들과의 논쟁 1
초기 감리교 부흥 운동은 휫필드를 따르는 예정론자들에 의해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휫필드를 따르는 예정론자들은 무분별한 언행으로 감리교 신도회에 큰 고통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어코트(Acourt)는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습니다. 그는 존 웨슬리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는 런던 뎁트포 신도회의 지도자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열성적인 예정론자가 되어 자기 신도회에서 존 웨슬리의 허락없이 예정론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고 신도회원들에게 예정론자가 되도록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어코트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여러 번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존 웨슬리 형제를 모욕적으로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온통 잘못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바르게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나는 온 세상에 나가서 당신과 당신의 동생이 거짓 예언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말은 존 웨슬리에게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감리교 부흥 운동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어코트를 신도회에서 추방시켰습니다.
어느 날 찰스 웨슬리가 어느 예정론자의 장례식에서 만인을 위한 구원을 설교했습니다. 그날 이후 찰스 웨슬리는 지독한 예정론자였던 와이드보어라는 사람에게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찰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대들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은 것이라면 나의 영혼을 저주하라.”
예정론자들의 무분별한 언행으로 신도회 내에서 교리 논쟁이 벌어졌고 교리 논쟁은 감정싸움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예정론자는 존 웨슬리에게 이런 모욕적인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은 복음의 설교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선택과 성도의 최후까지의 구원을 설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휫필드를 따르는 예정론자들은 신도회에서 예정론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을 이단처럼 대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신도회가 이런 혼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조지 휫필드는 존 웨슬리의 완전 성화 교리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존 웨슬리가 현세에서 죄 없는 완전을 가르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참된 구원이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해서만 되는 것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만이 정통신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웰 해리스는 존 웨슬리 형제의 입장을 거세게 비판하는 설교를 하고 다녔습니다.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존 웨슬리는 몇몇 신도회에서 예정론자들을 제명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조지 휫필드에게 책망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며칠 후에 조지 휫필드의 답장이 왔습니다.
“당신의 친절한 책망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더 이상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내 혀를 지켜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 당신이 나를 책망하시나 나는 당신을 더욱 존경합니다.”
휫필드는 이 편지를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1741년 초까지 그는 미국에 있으면서 편지로 존 웨슬리에게 예정론을 비판하는 설교를 하지 말고 침묵을 지켜주실 것을 계속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존 웨슬리 사이가 악화되거나 갈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전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