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81) 감리교 구제 헌금의 전통

(존 웨슬리 이야기 81) 감리교 구제 헌금의 전통

시온 0 9


존 웨슬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평생 진심으로 정직하게 따랐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자신의 이웃으로 여기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 영국 사회는 철저한 귀족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당시 감리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교회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감리교회의 1차 전도 대상이면서 동시에 구제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감리교회는 정기적인 구제 헌금을 통해 국내와 국외의 가난한 사람들, 피난민들, 전쟁과 기근과 재난을 만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감리교인들은 언제나 자유롭게 구제 헌금을 했으며 어떤 성도는 자기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구제 헌금을 위해 하나님께 바치기도 했습니다. 또 지역 단체들이 감리교회에 구제 헌금을 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감리교회는 성도들에게 언제나 구제 헌금을 하도록 안내하고 격려했습니다. 구제 헌금은 감리교회의 가장 큰 전통이자 특징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어떤 지역이든 가난한 사람들과 재난을 만난 사람들을 제일 먼저 돕고 가장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들은 언제나 감리교인들이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세계의 최고 강대국으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으로 크게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실업자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이 계속 늘어갔습니다. 이때 감리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교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850년 감리교 총회에서 하나님께서 감리교회에 맡기신 선교적 사명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돕는 것임을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감리교인의 책임입니다. ……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어떤 경우에도 죄를 짓는 것이고, 가난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힘이 닿는 데까지 궁핍과 슬픔과 고통에서 구해주는 자선 행위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영국 감리교회가 빈곤과 전쟁이나 재난으로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 헌금으로 살려낸 사건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한 예로, 1860년대 초 북미 독립전쟁으로 랑카셔 주()의 면직공장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고 궁핍해졌을 때 감리교회는 즉시 그들을 위해 구제 헌금을 보내왔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감리교회의 도움으로 가정과 사회적 위기를 극복했으며 큰 도덕적 재앙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부터 영국의 대표적 슬럼가였던 런던 동부 지역(East London Areas)18세기 말부터 감리교 사회선교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곳입니다. 감리교회는 구제 헌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고 학교와 사회 교육 기관을 세워서 이 지역의 생활 개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톰슨(Peter Thompson)은 이 지역의 변화를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언어가 교양 있고 경건하고 신사답게 변했습니다. 그들의 난폭한 행동은 사라지고, 골목 싸움과 술주정도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가정생활이 정결하고 품위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이들을 잘 돌보게 되었고, 자기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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