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99) 영국 감리교회 독립의 여정 2

(존 웨슬리 이야기 99) 영국 감리교회 독립의 여정 2

시온 0 10


존 웨슬리가 감리교 부흥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영국 성공회애서 분리하여 새로운 교파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 안에서 영적 갱신 운동을 일으켜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에 따른 성결 운동을 영국과 온 세상에 전파하려고 감리교 부흥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감리교회가 점점 더 커지면서 영국 성공회에서 독립하자는 성도들의 요구가 계속 이어졌지만, 존 웨슬리는 성도들의 요구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리교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나는 영국 성공회 성도로 살고 죽을 것입니다. 모교회를 떠나지 마십시오. 모교회를 떠나는 것은 곧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당시 감리교 성도들의 모임은 모두 공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영국 성공회 예배를 보충하는 성격을 가진 모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감리교 성도들은 주일이면 성공회 교구 교회의 공식적인 주일예배에 참석해야 했고, 예배 중에 성만찬에 참여했으며, 성공회의 모든 교리와 규칙과 법에 복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감리교인들은 존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라서 충성된 성공회 성도로 살았습니다. 한번은 런던의 가장 큰 성공회 성당인 바울 성당의 담임 사제가 이런 탄식을 하며 고백했습니다.

 

주일 성찬 예배에 다른 교인들은 오지 않고 감리교 성도들만 오니 나는 감리교인들의 사제가 되었구나.”

 

그러나 감리교인들이 성공회에서 독립하지 않고 계속 영국 성공회 성도로 살기를 바랬던 존 웨슬리의 바램은 현실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은 이상적인 바램이었습니다.


감리교인들을 향한 영국 성공회의 핍박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영국 성공회 성직자들은 여전히 감리교인들을 싫어했고 노골적인 차별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리교인들은 존 웨슬리의 명령에 순종했지만, 무엇인가 현실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의 잘못을 강하게 비판했고 부패한 성공회를 개혁하려는 의지도 강했지만, 그만큼 영국 성공회를 사랑했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1786년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우리 영국 성공회가 세계에서 가장 성서적인 교회라고 믿습니다. 나는 성공회의 모든 교회에 동의하며 모든 예식의 규칙을 지킵니다.”

 

존 웨슬리에게 영국 성공회는 말씀과 예식이 조화를 이룬 교회였습니다. 영국 성공회는 예배마다 말씀 선포와 성만찬 예식에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전통에 따라 존 웨슬리가 시작한 감리교 부흥 운동도 성만찬 예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감리교 부흥 운동은 전도 운동이면서 동시에 성만찬 부흥 운동이었다고 말했습니다.

 

1744년 존 웨슬리는 최초로 감리교 설교자 총회를 런던 파운드리 예배당에서 일주일 동안 열었습니다. 1회 총회에서는 감리교 교리와 신앙훈련의 규범을 만드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다음 조직과 제도와 행정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다루고 맨 마지막으로 설교자들을 파송하는 파송기를 낭독했습니다. 1회 총회에는 존 웨슬리를 포함한 성직자 6명과 평신도 4명이 모여 일주일 동안 회의를 열었습니다.

 

1회 총회는 감리교인들은 무엇을 믿는지를 정립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동시에 감리교 교인들을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지를 정하는 것도 두 번째 과제였습니다. 매회 총회가 거듭될수록 감리교 교리와 신앙 훈련의 규범은 명확해졌고 감리교 연합체는 더욱 강한 결속으로 조직화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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