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102) 미국 감리교회의 탄생 2

(존 웨슬리 이야기 102) 미국 감리교회의 탄생 2

시온 0 136


존 웨슬리는 미국의 감리교 선교를 위해 감리사 제도를 만듭니다. 존 웨슬리는 감리사를 안수하여 세우고, 감리사에게 미국에 가서 평신도 설교자에게 안수를 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감리사는 감독과 같은 권한을 갖지만 영국 성공회 감독처럼 가만히 앉아서 명령하고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고 직접 복음 전도의 일선에서 설교하고 목회자들을 훈련하고 신도회를 돌보는 실천적이고 헌신적인 직무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 정회원 목사였던 토마스 코크(Thomas Coke)를 감리사로 안수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프란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에게 성직 안수를 주고 공동으로 감리사직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코크를 감리사로 미국에 보내면서 영국 성공회의 39개 교리를 24개로 축약했고 공동기도서를 감리교에 맞게 개정 축약해서 함께 보냈습니다.

 

코크 감리사는 1784년 볼티모어에서 크리스마스 총회를 열었습니다. 이 총회는 1224일에 시작하여 다음 해 12일까지 열흘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이 총회에서 미국 감리교회가 조직되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코크 감리사는 애즈베리를 첫째 날 준회원 목사로 안수했고, 둘째 날 정회원 목사로 안수했고, 셋째 날 감리사로 안수했습니다.

 

이 총회에서 존 웨슬리가 보낸 개정판 공동기도서와 24개 교리를 새롭게 탄생 된 미국 감리교회의 예배서와 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미국 국가에 대한 신앙고백을 더해서 미국 감리교회는 25개의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또 존 웨슬리의 표준설교와 신약 성서 주해를 감리교 설교자들을 본받고 따라야 할 표준설교로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감리교회는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코크와 함께 미국 감리교회의 감리사가 된 프란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1745년 영국 중부 버밍엄 근처 한즈워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정원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복음적 회심을 체험한 열정적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프란시스 애즈베리는 어렸을 때부터 영리하고 독서를 좋아했고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그는 12세 때 학교를 중단하고 철물 제조공장의 견습공과 무역상의 심부름꾼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열심을 가진 애즈베리는 13살 때 존 웨슬리가 세운 최초의 평신도 설교자였던 알렉산더 마터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게 됩니다. 그 후 16세부터 설교를 시작하여 21세에 존 웨슬리에게 순회 설교자를 임명을 받게 됩니다.

 

177126세 때 애즈베리는 미국 선교사로 파송받게 됩니다. 그 후 그는 181671세가 되도록 45년 동안 북미 복음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사역하게 됩니다.

 

애즈베리는 늘 독서에 힘썼고, 독학으로 성경과 신학에 놀라운 지식을 쌓았습니다. 그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 막힘없이 읽을 수 있는 실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몸을 돌보지 않고 순회 전도를 열심히 하였고, 금식을 너무나 많이 했고 지나친 금욕생활로 늘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애즈베리는 존 웨슬리만큼 경건하고 헌신적인 전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애즈베리를 미국 감리교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고 미국의 존 웨슬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국 전역을 말을 타고 수십 번 돌며 미국 복음화에 자기 인생을 전부 바쳤던 복음의 사도였습니다.

 

애즈베리는 순회 전도자로 살았던 45년 동안 16,500번의 설교를 했고, 270,000마일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그는 매년 6,000마일 이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또 그는 224번의 총회를 주관했고, 4,000명에게 성직 안수를 주었습니다. 그가 말을 타고 다닌 거리는 존 웨슬리보다 더 긴 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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