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이야기 113) 존 웨슬리의 장례식

(존 웨슬리 이야기 113) 존 웨슬리의 장례식

시온 0 6


179139일 존 웨슬리의 장례식은 존 웨슬리가 미리 유언한 대로 치러졌습니다. 그의 시신은 값싼 모직으로 쌌고, 평소 그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가난한 사람들 6명이 운구를 맡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그들의 수고비로 한 사람당 1파운드씩 돈을 남겨 놓았습니다.

 

나는 영구차나 마차나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방패나 어떤 종류의 허례허식도 사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다만 나를 사랑하고 아브라함의 품까지 나를 따라 올 사람들의 눈물만 있으면 족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의 유언 집행인들에게 엄숙하게 청하니 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존 웨슬리는 죽기 전에 모든 돈과 물건을 가난한 사람들과 설교자들과 끝까지 자기를 돌보느라 고생한 사람들에 다 주고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그가 입었던 성의와 수저 한 개뿐이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의 초상화로 장식된 과자 한 개씩을 받았습니다.

 

장례식이 치러진 예배당은 전체가 검은색 천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 검은색 천으로 가난한 여인 60명에게 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파운더리 예배당 자리에 1778년 새로 세워진 런던 시티로드 예배당 뒤편 묘지에 묻혔습니다. 충성된 감리교 성도였던 존 웨슬리의 누이동생 마르다가 4개월 후에 85세의 나이로 죽어서 존 웨슬리가 묻힌 자리 옆에 함께 묻혔습니다.


존 웨슬리의 관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라틴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요하네스 존 웨슬리 문학 석사

전 옥스퍼드 링컨 대학 펠로우

179132일 소천

향년 88

 

존 웨슬리는 50세의 나이인 1735년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고 미리 자신의 묘비명을 적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불 속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 존 웨슬리의 몸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는 51세의 나이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빚을 갚고 단 10파운드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무익한 종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러나 존 웨슬리의 묘비명은 그가 써놓은 것과 아주 달랐습니다. 그의 묘비명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아주 긴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옥스퍼드 링컨 대학 펠로우, 문학 석사, 존경하는 존 웨슬리를 추모함. 이 위대한 빛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로 일어나서 이 민족을 깨우쳤고 초대 교회의 순수한 사도적 교리와 실행을 회복시켰고 강화했고 확립했습니다. 그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육신의 수고와 책들로 이것을 옹호했고 이 나라들만 아니라 전 세계에 그 영향력을 확장했습니다. 표현하기 어려운 기쁜 마음으로 전한 그의 영향력은 사람들의 마음과 삶 속에 증거되었고, 모든 인간의 능력과 기대를 초월하여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 위에 확립되었고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여 미래 세대에게 큰 복이 되었습니다. 이 비문을 읽은 분들이여. 그를 축복하는 것이 마음에 거리끼신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잠깐 고난의 수고를 마치고 그는 179132일에 88세로 죽음에 대한 영광스러운 승리와 함께 그의 생을 마쳤습니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