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8월 27일 토요일) - 진화론의 출발 (질문 3-1)
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8월 27일 토요일) - 진화론의 출발 (질문 3-1)
코로나가 끝나고 여러 가지 사역이 바빠지면서 2달 동안 아포리즘을 쉬었습니다. 잠시 쉬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2달 동안을 쉬었습니다. 쉬었던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녀들과 여름 휴가를 보내고 다시 용기를 내어 아포리즘을 재개합니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님의 기독교에 대한 24가지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포괄적인 질문들이 많아서 질문을 세분화해서 답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서 대답할 것이 아직 남아있지만, 너무 늘어지는 것 같아서 3번째 질문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이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3-1 진화론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이병철 회자의 3번째 질문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를 묻는 것 같지만 실상 진화론의 입장에서 창조론이 거짓이 아닌지를 따져 묻고 있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한다는 것은 제 역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 방대한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진화론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왜 시작되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839년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은 ‘비글호 여행기’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남서쪽으로 불어오는 심한 폭풍 때문에 출항 후 두 번이나 되돌아와야 했던 비글호는 드디어 1831년 12월 27일 영국 해군 피츠로이 함장의 지휘하에 열 개의 포문을 갖추고 영국의 데먼포트를 출발했다.”
현재 진화론은 이 문장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한때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다윈은 탐사선 비글호를 타고 남미를 행했습니다. 비글호는 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배 뒤편에 커다란 삼각돛을 세 개나 추가로 달아 놓은 개조된 탐사선이었습니다.
비글호를 타고 다윈은 5년 동안 남미 해안의 여러 섬들을 돌며 동식물과 지질을 관찰했습니다. 특히 ‘칼라파고스 군도(Galapagos Island)’와 ‘티에라 델 프에고(Tierra del Fuego)’ 섬에서 새로운 변종 동물과 식물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참새 종류의 하나인 핀치새는 부리 모양이 다른 4가지 종류를 발견했습니다. 부리가 두꺼운 쪽은 씨앗이나 열매를 먹기에 좋았고, 부리가 뾰족한 쪽은 벌레를 먹는 데에 유리했습니다.
거대한 파충류인 땅 거북은 찰스 섬과 후드 섬에 사는 거북과 제임스 섬에 사는 거북이 달랐습니다. 찰스 섬과 후드 섬에 사는 거북은 목에 가까운 앞쪽 등딱지가 말 안장처럼 위로 올라간 모습이었습니다. 제임스 섬에 사는 거북의 등딱지는 가운데가 불룩 솟은 돔(dome)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윈은 이런 생물들을 관찰하면서 생물들이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일정 부분 변화됐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중한 성격의 다윈은 자신의 확신을 입증할 다양한 자료를 많이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매사에 신중했던 다윈은 자신의 확신을 바로 발표하지 않고 20년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Alfred Russel Wallace)라는 탐험가이자 과학자가 다윈과 같은 주장을 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다윈은 자기 생각과 같은 주장을 담은 논문을 읽고 용기를 내어 1858년 런던의 린네 학회에서 윌리스와 함께 진화론에 관한 최초의 논문인 ‘자연선택’를 발표하게 됩니다.
이듬해 1859년 11월 24일 다윈은 영국 런던 존 머레이 출판사에서 500쪽 분량의 책 ‘종의 기원’을 출간하게 됩니다. 초판 1250부는 순식간에 팔려나갔고 출판사는 바로 3000부를 더 발행하게 됩니다. 이 책으로 진화론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의 모든 생물은 생존경쟁을 통해서 환경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종만 살아남는 방식으로 오랜 세월을 거쳐서 진화가 이루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다윈이 처음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 기독교인들은 큰 무리 없이 진화론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윈이 생물 진화의 대상으로 인간을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의 기원’이 발표된 지 12년 후에 다윈은 ‘인간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다윈은 오랜 침묵을 깨고 인간을 진화의 행렬 속으로 집어넣게 됩니다.
이 책은 엄청난 논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닌 원숭이의 후손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책 ‘인간의 기원’에서 다윈은 인간도 다른 생물처럼 하찮은 동물로부터 우연히 진화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선택과 보살핌, 인도 그리고 구원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다윈의 책 ‘인간의 기원’ 이후 세상은 무신론이 활개를 치게 됩니다. 이때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즐거운 학문’이란 책에서 이렇게 외치게 됩니다.
“광인, 그대들은 한 광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빛나는 아침에 등불을 켜 들고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고 외쳐대면 시장 안을 뛰어다닌 광인의 이야기를!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어서 그는 굉장한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니 신이 없어져 버렸다는 말인가?’ 한 사람이 말했고, ‘어린아이처럼 신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니면 어디로 숨어버렸나? 신은 우리가 두려운 건가? 배를 타고 떠도는 중인가? 외국으로 이사를 갔나?’ 그들이 이렇게 웃으며 떠들어대 온통 왁자지껄해졌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번뜩이는 눈으로 쏘아보며 부르짖었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내가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 당신과 내가! 우리가 모두 신을 죽인 살해범들이다.…… 신을 매장하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다윗의 책 ’인간의 기원‘에서 현대적인 무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윈은 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에는 목사가 되려고 했던 열렬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중년에는 교회를 떠났지만, 진화론 때문이 아닙니다. 1851년 그가 사랑했던 딸 애나가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10살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상처로 교회를 떠났지만 한 번도 무신론을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신중한 성격으로 종교적인 혼란을 겪을 때도 자신을 불가지론자라고 불렀습니다. 1879년 다윈은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판단이 극도로 흔들릴 때도 나는 결코 무신론자인 적은 없었습니다. 나는 항상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불가지론자가 내 마음 상태를 표현해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가지론이란 ’알 수 없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신의 존재 여부를 이성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현대 무신론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다윈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무신론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데스먼드(A. Desmond)와 무어(J. Moore)가 공동으로 쓴 ‘다윈 평전’에 보면, 다윈이 어떤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유신론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있습니까?”
이에 다윈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열렬한 유신론자인 동시에 진화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대답은 다윈이 지지했던 불가지론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됩니다. 그는 진화론자였지만 끝까지 신이 존재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다윈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그의 후계자들은 진화라는 패러다임을 다양하게 활용하게 됩니다.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진화경제학, 진화사회학, 진화철학, 다윈 의학 등등 진화라는 패러다임으로 자연과 사회와 문화와 인간 자체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다윈 이후 진화론은 자연과 세상을 보는 하나의 눈이 되었고 심지어 종교처럼 신봉되고 있습니다. DNA 나선 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James D. Watson)은 다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찰스 다윈은 인류 사상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나 마호메트보다 훨씬 더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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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자신이 남미를 여행하면서 자연을 관찰한 내용을 책을 펴냈습니다. 그의 책은 자연의 생물들이 자연의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 변화되고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다윈의 진화론을 하나님을 부인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윈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현대적인 무신론을 일으킨 과학 사상가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은 단 한 번도 무신론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다윈의 추종자들이 다윈의 주장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도구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이성의 도구로 입증할 수 있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18-19)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0)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