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9월 19일 월요일) - 진리를 깨닫기 위한 인내 (질문 5-1)

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9월 19일 월요일) - 진리를 깨닫기 위한 인내 (질문 5-1)

시온 0 1408

오늘의 아포리즘 (2022919일 월요일) - 진리를 깨닫기 위한 인내 (질문 5-1)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님의 기독교에 대한 24가지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5번째 질문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포괄적인 질문들이 많아서 질문을 세분화해서 답을 나누고 있습니다.

 

5.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5-1 이 질문에 온전한 답을 얻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기독교의 긴 역사 속에서 이병철 회장과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이 부분에 대해 대답을 시도했습니다. 다양한 답변들이 나왔는데, 그것을 신정론(神正論)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데오디시(theodicy)’라고 부릅니다. 헬라어로 데오스(θεός / theós)는 하나님을 뜻하고 디케(δίκη / díke)는 의롭다는 뜻입니다.

 

신정론은 하나님께서 전능하고 선하다면 왜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대답입니다. 하나님께 고통을 막을 수 있는 능력(전능하심)과 의지(선함)이 있다면, 왜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고통을 허용하느냐는 물음입니다.

 

이 용어를 만든 사람은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입니다. 그가 신정론(Theodizee)’이란 책을 써서 그 후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고 선하시다면 왜 세상에 고통과 불행이 있는지에 대한 모든 대답을 신정론이란 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755111일 오전 945분에 포루투칼 수도 리스본에서 강도 9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지진으로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평온했던 도시는 삽시간에 고통, 불행, 공포 등 비참한 도시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일부 프랑스 성직자들은 재난의 이유를 리스본 사람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볼테르(Voltaire)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프랑스 계몽사상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M. Arouet)는 분노하며 시를 발표했습니다. 그 시에는 신을 비난하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신은 재난을 방지할 수 있는데도 방지하려 하지 않는가, 아니면 방지하고 싶지만 방지할 능력이 없는가?”

 

이 시는 무신론자였던 볼테르의 질문 같지만 실상 고대부터 내려온 철학자의 질문을 변용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에피쿠르스(Epicurus)는 신의 부재를 증명하기 위해 딜레마(dilemma)라고 불리는 질문을 제시했습니다. 딜레마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곤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에피쿠르스가 발표한 딜레마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은 악을 없애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의를 가진 것이다.

그는 능력도 있고 없애려고도 하는가?

그렇다면 악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그는 능력도 없고 없애려고 하지도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를 신이라 부르나?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악의 존재는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악이 존재하려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아야 합니다. 악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반드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신정론입니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오래된 역사를 가진 질문입니다. 질문은 간단하지만, 대답을 간단하지 않습니다. 질문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대답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대답들을 간략하게라도 정리해야 더욱 정확한 대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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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든지 온전한 이해를 하려면 성급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성급한 결론은 언제나 부족한 결론이 되어 처음부터 다시 질문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은 왜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데 왜 내가 이런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인내심을 갖고 대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고 이내 자기 생각으로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불신하고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신앙적인 방황을 하게 됩니다.

 

우리를 진리를 깨닫기 위해 겸손함과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내심을 갖고 겸손하게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성급하게 내 생각으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의 길은 인내와 겸손으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3-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15:4)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10:36)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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