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2월 2일 수요일) - 기적의 시작

오늘의 아포리즘 (2022년 2월 2일 수요일) - 기적의 시작

시온 0 2199

오늘의 아포리즘 (202222일 수요일) - 기적의 시작

 

설날 마지막 날에 딸과 함께 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하는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무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미 여러 전시회에서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본 적이 있기에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도리어 같은 화풍의 다양한 그림을 계속 보면 지루할 것 같은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시회에서는 박수근의 초기 작품부터 그가 생계를 위해 잡지에 그렸던 삽화 그리고 화풍이 완성되고 나서 비슷한 듯 약간씩 차이가 나는 작품들을 보면서 많은 감동과 영감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과 삶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기에 앞으로 며칠 동안 아포리즘은 박수근 특집으로 글을 쓸 예정입니다.

 

감리교 성도였던 화가 박수근과 그의 아내 김복순 전도사의 생애는 한 마디로 기도의 인생이었습니다. 박수근은 양구군 부농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7살 때 그의 아버지가 광산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면서 갑자기 가난해집니다.

 

박수근은 12살 때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보고 큰 감동을 합니다. 그는 미술을 사랑하게 되었고 오득영 미술 선생님께서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셨을 때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가난해진 그는 전문적인 미술 수업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족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그는 우물에서 물을 떠 와야 했고 망에 밀을 갈아서 수제비를 끓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홀로 그림 연습을 계속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담에 커서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주세요.”

 

너무나 가난해서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박수근은 혼자 미술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그는 미술책이나 잡지에 실린 외국 화가의 작품들을 보고 익히며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산과 들로 다니면서 농가에서 일하는 아낙네와 나물 뜯는 소녀들을 스케치하며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독특한 화풍은 간절히 기도의 열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며 그림을 그리는 박수근을 단순히 외국의 그림을 흉내 내는 사람이 아니라 독특한 자기 화풍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0대 후반 박수근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하나는 18세에 조선 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난 때문에 양구에서 강원도 금성군(김화군)으로 이사를 와서 빨래터에서 만난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한 것입니다. 그때의 장면을 그린 그림이 바로 452000만원에 팔린 빨래터입니다.

 

박수근이 반한 아가씨는 김복순입니다. 강원도 금성군의 부잣집 딸로 태어나 춘천여고를 나온 신여성이었습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박수근이 쳐다볼 수 없는 여성이었습니다. 둘은 함께 금성감리교회를 다녔고 박수근은 김복순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복순은 병원장 아들과 약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이때도 박수근은 이번에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김복순에게 사랑의 편지를 쓴 고백 노트를 전달하게 됩니다. 김복순이 쓴 책 박수근 아내의 일기에 그 내용이 이렇게 나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육신적(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될 겁니다. 그러나 나는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박수근의 편지는 김복순의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김복순은 아버지에게 심한 야단을 맞고 매도 맞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박수근은 다시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당시 김복순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루 세끼 조 죽을 끓여 먹어도 좋으니 예수님 믿고 깨끗하게 사는 집으로 시집가게 해주세요

 

김복순은 그림과 가족 그리고 기도밖에 몰랐던 순박한 박수근의 성품에 반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반대를 이기고 결국 박수근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때의 감사와 감격을 박수근은 이렇게 편지에 담아 김복순에게 보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요? 그 사람과 약혼을 한 당신이 내 아내가 되어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줄 알면서도 나는 하나님께 수없이 기도했습니다. 당신을 내게 돌려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 1940년 박수근의 나이 28살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 후 10년 만에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박수근은 그 지역 기독교 지도자였던 한사연 목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학살 대상이 됩니다. 김복순은 남편을 피난시켰고 남편이 국군의 앞잡이 포스터를 그려주었다는 죄목으로 온갖 고문을 받습니다. 그때 김복순은 두 살 짜리 아기를 잃습니다.

 

그 후 김복순은 남편을 찾아 이남으로 피난을 내려옵니다. 그녀는 시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남편 찾다가 죽으면 죽고 다행히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 떠납시다

 

그녀는 8살과 4살 된 두 자녀를 데리고 탈출을 시도하여 양양 남대천을 건너 미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군을 만난 그녀는 자신은 예수 믿는 그리스천이라고 고백했고, 친절한 미국은 그녀를 안양대피소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한강을 건넌 김복순은 창신동에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내를 수소문하며 찾고 있던 박수근과 재회하게 됩니다. 김복순은 남편과 다시 재회했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성남 아버지(남편)가 그 자리에 서고, 나도 그이를 보니 자리에 선 채로 손발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두 부부는 박수근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서로 기도하며 존중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부부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남편 박수근이 죽은 후에 김복순은 서울 중곡동 교회에 전도사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당시 중곡동 교회는 한경직 목사님의 동생 한승직 목사님이 담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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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모든 일의 배후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소한 작은 일도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도와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기도 없는 어떤 계획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계획은 인간이 세우지만 그 계획을 인도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 어떤 계획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계획은 기도로 세우고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청해야 이루어집니다. 기도 없이는 그 어떤 계획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더라도 그 계획이 이루어지느냐 이루어지지 않느냐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계획을 세울 때도 기도해야 하고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도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어떤 계획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기도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4:14)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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