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포 뚝과 쪽빛수로

선두포 뚝과 쪽빛수로

마리힐 0 5569

   쪽빛수로는 강화 남쪽 관문 초지대교를 지나 동막해수욕장 가는 길상면과 화도면의 경계에 있다. 바로 수문이 있는 길화교를 건너 가는 길이 선두포 뚝이다.

  

     1707년 (숙종 33) 조선후기의 간척공사를 대표하는 선두포제방은 넓은 농경지 선두평의 확보와 교통조건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선두포 제방을 쌓기 전까지 강화 남단의 선두포구와 서남쪽의 가릉포구 사이에는 조수가 통하였다. 즉 강화 본도와 마니산 사이에는 좁고 긴 수로가 있어 초지포구의 선박은 화도면 남단 동막 해수욕장으로 우회하지 않고 이 수로를 통하여 외포리나 석모도로 질러 갈 수 있었다. 그때 배가 머물다 가는 포구로는 선두포구, 덕포포구, 가능포구, 송강포구(소루지)와 지금도 배가 들고나는 선수포구(후포항)가 있고 출어기에 곶창굿을 올렸던 고창촌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선두포제방은 폭 41파, 길이 410보로서 강화부와 소속군영에서 공사완료까지 연인원 약 11만 명을 동원하고 소요경비로 쌀 2000석, 병조목(兵曹木) 50동, 정철(正鐵) 7000근을 들여 완성하였다.” 축언과정을 자세하게 비에 새겨 선두포 뚝에 세워놓은 것이 “선두포축언시말비” 이다. 지금 이비는 강화역사박물관이 개관되어 강화역사박물관 1층 전시실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선두평에는 1970년대까지도 염해를 입은 농토가 적지 않았다. 주민들은 지하수 관정 굴착, 물광의 축조 등을 계속해 왔고 작은 하천들의 하구에는 방조제가 축조되었으며 과거의 갯골이 유수지 역할을 하여 관개용수를 저장하였는데 선두지가 대표적 관개용 지소였다. 이곳은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각각 수십리 평야의 관개수원으로 중요시 되었다.·

 

     길화교가 자리한 쪽빛수로는 이렇게 만들어졌는데 많은 비가 올 때 충분히 빗물을 담아 놓았다가 농번기에 넓은 논에 물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장마철에는 수문을 열어 논경지가 침수되지 않도록 바다로 넘치는 빗물을 흘려보낸다. 강화에는 없는 것이 바로 “강”이다. 따라서 평상시 빗물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넓은 수로를 많이 만들었는데 풍족하게 물을 쓰고 가뭄에도 대비 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수지 중 하나인 쪽빛수로는 주위에 나무가 없어 하늘빛만 비추어서 쪽빛이 되었다 해서 이름 지어졌는데 오늘날 많은 낚시 애호가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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