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려 고려장군 강화에서 잠들다.

김취려 고려장군 강화에서 잠들다.

마리힐 0 5829

인천시 문화재자료 : 제25호(2010년 지정)

   소재지 :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산71

   

   고려 후기의 장군 김취려는 고려 후기 예부시랑을 지낸 김부(金富)의 아들로 본관은 언양이며, 음서(蔭敍)를 통해서 정위(正尉)에 임명되었다. 그 후 1219년에는 몽골군과 동진국과 힘을 합쳐 강동성에 웅거한 거란군을 격퇴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1232년에는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사람됨이 정직하고 검소하였으며, 아랫사람을 바르게 다스려 누구도 그를 속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고종 21년(1234) 강화에서 사망하였다.

 

    김취려 묘지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공은 갑오년(고종 21, 1234년) 2월 14일에 미미한 병세를 보이다가 21일에 갑자기 돌아가시니 향년 63세이다. 천자(天子)께서는 몹시 슬퍼하며 조문하고 부의를 내리셨다. 공은 복야(僕射) 조언통(趙彦通)의 따님을 부인으로 맞아들여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두시고 뒷일을 처리하게 하였다. 7월 12일에 진강산(鎭江山) 대곡동(大谷洞) 서쪽 기슭에 예장하였다.’

  

    묘지석이 발견된 곳에 강화군과 언양 김씨 종친회에서 묘소를 새롭게 정비하였다. 묘에서 출토된 묘지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묘역은 양도면 하일리 하우고개 턱밑 큰길가에 “김취려 묘 안내표지”와 바로 오른쪽에“언양김취려장군묘소(彦陽 金就礪將軍墓所)”라는 묘석이 있고, 여기에서 약 1km 다시 들어가면 묘역이 있다. 묘역의 석물은 모두 새로 조성된 것이다. 묘역에는 상석 ·망주석 ·신도비 등이 있다. [참고: 강화의 문화재 ]

   

  김취려 장군 고향 울산광역시에도 기념물 제7호로 지정받은 장군의 묘가 있다. 언양김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후손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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