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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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국보 제151-1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조선시대의 정치·사회·외교·경제·군사·법률·문화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이와 같은 가치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실록 편찬은 국왕이 서거하고 다음 왕이 즉위한 후에 이루어졌다. 실록 편찬을 담당하는 임시 기관으로 실록청을 설치하고 편찬관을 임명한 다음, 사관(史官)이 작성한 사초(史草)와 시정기(時政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일성록(日省錄)』등의 정부 기록, 개인 문집 등을 이용하여 실록을 편찬하였다. 또, 국왕이라도 함부로 실록이나 사초를 볼 수 없도록 함으로써 사관들이 공정하게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완성된 실록은 국가의 중요 서적을 보관하는 서고인 사고(史庫)에서 보관하였다.


   1445년(세종 27) 전주사고본 실록이 처음 제작되었고, 이후 실록이 편찬될 때마다 전주사고에 1부씩 보관하였다. 조선전기에는 서울 춘추관과 충주·성주·전주사고에 각각 보관했는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3곳은 소실되었고 전주사고본만 남게 되었다. 전란이 끝난 후 1603년(선조 36)부터 3년에 걸쳐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 4부를 추가 간행한 다음, 춘추관(한양), 마니산(강화), 태백산, 묘향산(뒤에 적상산으로 이전), 오대산 등 5곳의 사고에 보관하였다.


    강화 마니산사고는 병자호란 중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1653년(효종 4)에도 화재로 일부 서적이 소실되었다. 이후 1678년(숙종 4)에 정족산에 새로 사고를 짓고 실록을 비롯한 마니산사고 소장 서적들을 이관하였다.


    정족산사고본 실록은 1910년 일제에 의해 서울로 이관, 규장각도서로 편입되어 조선총독부의 관리를 받다가, 1928~1930년에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다시 이관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정족산사고본 실록을 관리했으며, 1990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독립 기관으로 분리되면서 규장각이 정족산사고본 실록의 소장, 관리 책임을 맡게 되었다.

[ 참고 : 문화재청 국가 문화유산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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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족산 사고  솟을대문]


현재 실록 보관장소

* 오대산실록은 1910년 (순종 4년)에 일본 동경제국대학으로 옮겼으나 1923년의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불탔고 화를 면한 74책은

     우리나라로 돌아와 국립고궁박물관 보관함.

* 태백산실록은 부산기록정보센터 보관함.

* 정족산실록은 서울대 규장각 보관함.


* 적상산실록은 김일성종합대학으로 옮겼다.

* 춘추관실록은 1624년 이괄의 난으로 불타 없어졌다.

정족산본, 태백산본, 오대산본, 기타 21책 합계 총2,077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북으로 간 적상산본은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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