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꼬리 연미정

제비꼬리 연미정

마리힐 0 4239

● 연미정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강화도 북동쪽의 작은 동산에 위치한 연미정은 강화 월곶돈대 성곽 안에 있으며, 그 아래에 월곶진 성문 조해루(朝海樓)가 있다. 이곳에 오르면 북쪽으로 개풍군이 보이고 임진강과 한강이 합수되어 흘러내려와 유도를 지나면서 두 강줄기로 나뉘어 흐르는데 그 모습이 제비꼬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미정은 강화10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한양으로 오르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물때)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곳 월곶리 동네에는 주막집이 번성하여서 뱃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였고 한양 시전 특품을 고르는 곳이기도 하였다 한다. 한편 한양 방어의 최전방으로 어떤 적군도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지켰다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팔작지붕이다.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연미정(燕尾亭)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후금과 강화 조약(형제지교)을 체결했던 곳이다.

 

   고려천도 시기에 왕이 정2품 시랑 이종주에게 명해 구재생도(九齋生徒)를 연미정에 모아놓고 하과(夏課 : 여름 공부)를 시켜 55명을 뽑았다고 한다. 구재란 고려 때 최충이 설립한 사학 기관으로 그가 죽은 후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구재명부에 이름을 올려 문헌공도라고 불렀다.

 

   조선 전기의 무신 황형이 1510년(중종 5) 왜인과 대마도 왜군 300명이 합세해 폭동을 일으켜 제포와 부산포를 함락시킨 삼포왜란 때 전라좌도방어사로 전공을 세워 연미정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연미정을 오르는 오른쪽에 1892년(고종 29)에 세운 ‘고공신장무공황형택’이라는 비석이 있어, 황형 집터였음을 알 수 있다. 황형은 말년에 낙향하여 강화에서 살았다. 강화읍 월곶리 야산에 황형 사당이 있고, 사당 왼편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상계 곡장 없이 원형봉분으로 부부 합장묘이다.

 

 

   연미정은 군부대가 주둔하여 한강입구를 지켰으며 민간인통제 구역이어서 일반인 출입을 제한하였으나, 2008년 해안도로가 완성되어 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해제되면서 현재 누구나 자유스럽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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